비즈니스 디자인 씽킹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함으로써 생존을 위한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노력을 절감하고자 하는 성향은 모든 생물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는 비단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생존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작용에도 적용되는 원리다. 마음은 신경세포가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뇌의 산출물이다.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다. 뇌의 인지적 노력(cognitive effort)을 최소화하려는 성향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인지 심리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관점인 ‘인지적 노력 최소화 이론’은 학력,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심리적 기제에 내재된 특성을 설명해 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가진 보편적 성향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어렵고,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계산이 필요한 상황에서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반쯤 직관적인 판단 기제를 활용해 빠른 결론에 도달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 연구자 허버트 사이먼이 탐구한 이 휴리스틱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논리의 개념적 기초가 되었다. 일상의 휴리스틱이나 직관을 넘어 세상의 원리를 찾아 학문의 세계를 탐구하는 학자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이론과 모형들도 사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세상은 정보로 넘쳐난다. 인지적 노력을 최소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우리를 둘러싼 엄청난 정보량에 압도되어 버린다. 산을 오를 때 자신의 페이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올라가려 욕심을 부렸다가는 곧 지쳐 버린다. 우리의 마음도 이런 과부하(overload)에 의한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
1950년대 중반,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 대해 연구하던 심리학자 조지 밀러 교수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사람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의 한계가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홉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육 수준과 지능에 관계없이 이 한계는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다. 짧은 순간에 관찰하여 한 번에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점의 수는 다섯에서 아홉이었다. 점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 해도 결과는 비슷했고, 점을 숫자나 글자로 바꾸어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발견을 토대로 밀러 교수는 〈매직 넘버 세븐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투〉라는 논문을 미국 심리학회지에 발표했다(Miller A. G. 1956). 그러니까 인간의 단기 정보처리 능력의 범위인 매직 넘버는 다섯에서 아홉 사이라는 것이다. 훈련이나 눈썰미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그 범위가 이 정도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흥미롭게도 피실험자들은 점이나 글자를 단어로 바꾸면 다섯에서 아홉 사이의 단어를 포착해 냈다. 이 경우 각 단어는 하나하나의 글자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정보 덩어리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덩어리(청크)로 만드는 연습이 된 사람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천재나 대학자, 운동선수, 세일즈맨, 경영자, 어린 학생을 막론하고 사람의 인지 능력에 생각보다 낮은 수준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확했다. 그의 매직 넘버 이론은 심리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의 하나가 되었다.
미래의 지능형 로봇들은 서로 이런 귓속말을 나눌지도 모른다.
“사람이잖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조금만 많은 정보를 주면 오작동한다니까.”
“너무 복잡한 정보를 주는 것은 사람에게 해를 끼지는 일이야. 불법이라고.”
물론 장기 기억을 사용하여 차근차근 숙고하는 일이 주어지면 우리는 뇌에 매우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을 담아 놓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매직 넘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정보의 부하량과 사람의 일 처리 능력 간의 관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많은 연구가 뒤따랐다. 대체로 그 결과들은 1972년에 던컨이 찾아내 ASQ라는 게재하기는 물론이고, 읽기도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난 사회과학 저널에 발표한 결과와 유사했다(Duncan, 1972). 정보가 아주 적으면 일의 성과가 낮고 정보가 더 많이 주어지면 일의 성과가 높아진다. 그러나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일의 성과는 곧 한계를 드러낸다. 소위 거꾸로 된 U 형태의 성과 패턴을 보이는 것이다. 복잡한 결제에서 단순한 일 처리까지 모두 같은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도구의 동물 아닌가?. 현대의 인간은 인지 능력을 보강하고 도와줄 수 있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라는 막강한 정보처리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이들 정보처리 도구들은 특히 숫자로 된 정보를 대상으로 사칙을 수행하거나 통계로 요약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효율을 발산한다. 만일 사람들에게 정보를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디지털 기술을 주면 처리하는 정보량의 한계가 늘어나지 않을까? 도구를 가진 인간의 반응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나는 오래전 박사논문 연구의 일환으로 매직 넘버를 넘나드는 뭉치의 데이터와 정보처리 도구를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고 좀 더 복잡한 정보처리 상황에서 그들이 보이는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다섯 지역에서 11지역에 이르는 인구통계 자료나 다섯 제품에서 11개 제품에 관한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주고 문제를 풀어 보도록 했다. 그리고 피실험자들이 엑셀 같이 편리한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피실험자들은 모두 이런 도구를 잘 사용하도록 훈련된 경영대 고학년 학생들 또는 경영전문대학원 MBA 학생들이었고, 문제도 이들이 이해하고 풀기에 어렵지 않는 수준이었다. 비디오카메라로 화면을 녹화했고, 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며 누른 모든 버튼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정을 사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어떤 작업을 왜 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일곱에서 아홉 사이, 즉 매직 넘버 범위에 해당하는 양의 지역이나 제품에 대한 데이터 뭉치를 받은 집단은 내가 기대했던 대로 매우 정상적인 방식으로 통계 수치를 만들며 문제를 파악하고 임무를 완수했다. 11개의 지역이나 11가지 제품에 대한 데이터를 받은 집단은 데이터의 양에 부담을 느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데이터의 양을 줄이는 작업을 수행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아예 데이터의 일부를 무시하기도 하고, 일단 요약 정보를 만들고 나서는 원본 데이터는 거들떠보지 않고 요약 정보만 사용하기도 했다. 정보의 양을 줄여 매직 넘버 범위로 줄인 다음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작업을 하지 않은 피실험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전반적으로 데이터의 양에 따른 부담으로 시간이 촉박한 듯했고, 성과도 높지 않았다. 놀랍게도 정보처리를 돕는 도구가 있어도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근본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도구로 다루는 데이터의 절대량이 늘고 시간이 길어져도 결국 인간이 동시에 고려하는 정보량의 패턴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빅데이터의 시대다. 지능적인 사물이 늘어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다양한 센서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세상에 쌓여가는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찾아내 단순화시키기 위한 분석 도구를 사용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나 통계 기법, 그래픽 등을 활용하는 도구들이다, 이런 빅데이터 도구들도 인간의 정보처리 역량 그 자체를 높여주기 보다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단순화하거나, 요약하거나, 패턴을 찾아 복잡한 세상을 인간의 인지 한계인 매직 넘버 범위로 줄여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빅데이터 현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와 복잡한 세상 사이를 연결하여 균형을 맞추어 주려는 노력이 숨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말로 궁금한 점은 다른 데에 있다. 단순함을 추구하고 복잡함을 피하며 불필요한 노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모든 동물의 육체적, 인지적 성향이라면, 인간은 어쩌자고 만들지 않았어도 될 수많은 사물, 개념, 사상, 문화 산출물들을 만들어 이렇게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복잡성을 더 높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실험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나의 주된 관심은 데이터양이 정상적 범위에서 상한선, 즉 과부하에 가까워지는 부근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데이터의 양을 매직 넘버보다 적게 제공한 집단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보량을 매직넘버 범위 또는 그 이상으로 부여한 집단에서 보인 반응은 기존의 이론들을 토대로 내가 예상했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연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포함시킨 통제 집단과 같은 이 소량 데이터 집단에서 예상치 않은 흥미로운 행동들이 관찰되었다. 다섯 지역이나 다섯 제품에 대한 정보는 문제 풀이를 위해 제공한 시간에 비해 소량이어서 예상대로라면 피실험자들은 문제 풀이를 일찍 마치고 쉴 것이었다.
그런데 영상과 매크로 분석이 보여준 결과는 이들이 시간을 꽉 채워 무언가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데이터의 양을 늘리고 있었던 것이다! 통계 기능은 데이터를 요약하고 줄이는 도구다. 그래서 이 집단은 통계를 사용할 일은 별로 없었다. 대신 이들은 데이터를 복사해 붙여 놓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보거나, 데이터의 위치나 배열을 이동시켜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 보기도 하는 등 마치 데이터를 장난감 삼아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돌려보고 옮겨 보고 하는 행위들 중에는 논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동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끔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이나 새로운 사물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삶을 돌이켜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복잡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에너지와 노력을 아끼려는 본성을 거스르는 또 다른 본성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만일 그런 본성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호기심이나 창조와 관련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런 본성 중 하나는 필시 우리 마음의 저변에 깔려 있는 ‘놀이’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본능일 것이다. 놀이는 노력 최소화의 법칙이 무용지물이 되는 세계다. 포식동물이 진지하게 먹이를 사냥할 때는 최고의 효율성과 에너지 절약이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쥐나 작은 벌레를 죽이지 않고 이리저리 건드리며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놀이의 세상에서는 효율성보다 비효율이 오히려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호이징하, 1993)가 되면 복잡성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단순함이 회피의 대상이 된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간다. 도전과 불확실성이 뿜어내는 두려움 그 자체가 즐기는 대상이 된다. 놀이가 되면 더 어려운 도전, 가보지 않은 단계, 처음 가 보는 산, 새로운 시도가 선호와 선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생각과 언어와 기술과 사물을 가지고 즐기는 문화 놀이는 인간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촉발하고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하고 창조의 문을 열어젖히는 마법의 세계다.
사람은 인지적 놀이를 통해 문화적 산물을 만들고 즐긴다. 음악을 만들고, 예술품을 만들고, 창작물을 만드는 작업은 일하듯이 놀고, 놀 듯이 일하는 창조 디자인의 과정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 혁명 시대의 변곡점을 살고 있다. 변곡점 앞에 놓인 불확실성은 기대와 두려움이 섞여 있는 미래의 모습이다. 불확실성의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그 세상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디자인하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새로움을 디자인하는 능력이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되는 것이다. 암기력이나 반복된 훈련으로 반자동적으로 문제를 풀거나 일을 처리하는 인지 효율성보다 불확실성에 도전하고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는 창조 능력의 중요성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높아질 것이다.
비즈니스 디자인 씽킹은 비단 경영이나 디자인을 업으로 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술 혁명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도구다. 업종과 전문 영역, 학생과 은퇴자를 막론하고 교육, 봉사, 정치, 경영 등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삶과 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사업, 새로운 제품, 개선된 사회적 혁신, 제도 등을 디자인할 미래의 모든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사고의 도구다.
디자인 씽킹을 다면적으로 분해해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종합해 책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 자체가 내게는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놀이였으며, 창조의 과정이었다. 이 책은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디지털 혁명과 디자인 씽킹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부분이고, 제2부는 디자인 씽킹의 토대인 공감과 관찰을 다룬다. 제3부는 해법 창출의 꽃인 창조력을 그리고 제4부는 디자인 씽킹의 실행과 미래 초연결 세상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디자인 씽킹의 역할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