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 맵 트레이드의역사를 통해 보는 독도 발견사 (개정증보판)
울릉도와 독도는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불법 도해는 끊이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조선의 백성들과 관리들이 침입자들을 쫓아내고 우리의 영토를 지켜왔다.
예컨대 17세기 말 일본 어부들이 불법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건너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목재를 벌목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안용복과 같은 조선의 어부들은 일본인들의 불법 도해에 항의하다 일본에 피랍되기도 하였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기도 하는 등 우리의 해양 영토를 스스로 지켜왔으며, 조선의 정부 또한 정기적으로 울릉도에 수토사들을 보내 이들 섬에 대한 조선 왕실의 영유 의지를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한편 일본의 태정관 지령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대한 일본 측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 정부는 일본의 고유 영토론을 주장하는 등 독도에 대한 도발의 수위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한일 간의 갈등 양상으로 몰고가서 결국, 국제사법재판소 등 제3의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과거에 일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다거나, 일본이 이 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된다면, 지금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비신사적인 행태를 오래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 영유권 이슈는 한일 양자 간에만 국한되는 문제인가? 그리고 독도 영유권에 관한 논쟁은 동아시아 또는 극동에만 한정되는 특수한 문제인가? 외부 세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나?
이 책에서는 19세기 동안에 일본이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정황을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파헤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왜 19세기를 주목하고자 했나?
19세기는 동서양의 만남과 교류가 극대화되던 시기로서 탐험과 항해를 통해 지도 제작이 완성되던 시기이다. 한편 일본은 19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지도 제작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서구의 지도 제작 전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일본에서 생산된 지리 정보를 서구 세계에 보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19세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 가장 가까운 과거이며,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그리고 서구 세계와 동아시아 세계를 연결해 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용돌이치는 19세기의 극동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일방적인 억지 주장은 힘을 잃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위치해 있는 해상 공간은 일찍이 서구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으며, 항로상의 이정표로서 또는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그 중요성과 가치는 점점 더 부각되었고, 19세기 극동의 상황은 지도 제작에도 비중 있게 반영되었다.
한반도 동해상의 섬들에 관한 정보는 1717년에 청나라에서 제작된 「황여전람도」에 반영되어 프랑스로 전해졌으며, 20년 후인 1737년에 프랑스 왕실에서 프랑스어 버전으로 다시 제작되었고, 곧이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18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 등 해양 강국들은 중국을 통해 입수한 극동에 관한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극동 탐사에 나섰다. 기존 지도에 미처 수록되지 않았던 지리 정보는 탐험을 통해 직접 확인한 후 지도에 새로 추가되었고, 지도상에는 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섬들에 대해서는 지도에서 삭제하는 등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극동에 관한 지리 정보는 점점 더 완결도가 높아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등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지리 정보는 활발하게 유통되었으며, 탐험가들의 증언은 곧바로 지도 제작에 반영되었다.
일본은 세계지도 제작 과정에서 영국 등 서구의 지도 제작 전통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예컨대 영국의 상선 아르고노트(Argonaut)호의 극동 항해 이후, 지도상에 잘못 표현되었던 의문의 섬 아르고노트를 일본에서 그대로 따라 그리는 과정에서 울릉도를 아르고노트 섬에 비정하고, 독도를 다즐레(울릉도)에 비정하는 실수를 범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는 19세기 동안에 독도를 지도상에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였으며 한동안 그러한 상태가 유지되었는데, 1904~1905년 무렵 러일전쟁 시기에 독도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독도의 위치 및 명칭과 관련된 일대 혼란이 야기되었다.
1905년에 일본은 돌연 독도를 시마네현에 다케시마(竹島)란 명칭으로 불법 편입시켰지만, 사실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울릉도를 가리키던 명칭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알고 있었는데, 19세기 동안의 일대 혼란을 계기로 울릉도 명칭이 마쓰시마가 되고, 독도 명칭은 다케시마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19세기 내내 일본에서는 독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1905년에 이르러 허둥지둥 엉뚱한 이름으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불법적으로 편입시키는 일을 저지르고, 오늘날 이 섬이 그들의 고유 영토라고 억지 부리고 있는데, 이 상황을 어찌 보아야 할 것인가?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갈등 양상으로 국한시켜 볼 것이 아니라, 세계 교류사, 항해사, 지도 제작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편적인 테마로서 다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 섬의 영유권에 관한 의문은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독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지리학(지도학), 역사학(사상사, 교류사, 해양사),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들한테도 영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