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스로 한정했을까요? 아마 반룬의 다음과 같은 말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줄 겁니다.
“교회 현실에 대한 공공연한 불만의 징후가 프랑스의 특정 지역에서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지역은 고대 로마의 문화와 전통이 가장 오래 살아남아 야만이 문명을 완전히 삼켜버리지 못한 곳이었으니까.” _《관용》 중에서
‘야만이 문명을 완전히 삼켜버리지 못한 곳’, 프로방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스키피오의 꿈》의 무대가 됩니다. 왜냐하면 《스키피오의 꿈》이야말로 문명과 야만의 싸움이 가장 치열하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누가 문명이고 누가 야만인가, 문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명을 자임하는 우리가 실은 야만이 아닌가를 묻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스스로를 교양 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가 읽는 책들 때문에? 우리의 미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우리가 천 년도 더 된 신념과 공통 가치관을 계승하기 때문에? 진실로 이 모든 것이 뜻하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걸까? 적절한 책들을 읽으면 교양 있는 것일까? 이웃들이 살육당하고 국토가 파괴되고 도시들이 폐허가 되어도?
야만을 지배하기 위해선 야만인들을 써야 할까? 그들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대신 교양적 가치들을 보존하도록 그들을 착취해야 할까? 어느 편을 들든 아무 편도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던 아테네 노인의 말은 옳은 것일까? _280p
야만을 물리치기 위해 야만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한 만리우스는 이렇게 자문합니다. 그런가하면 20세기의 프로방스 인 마르셀은, 점령 독일군에게 협조하자고 쥘리앵을 설득하며 말하지요.
“쥘리앵, 독일인들 말이야, 독일인들. 기억나나? 우리 국토의 반을 점령한 사람들 말이야. 자네가 그렇게 주장했었지 않나? 야만인들이 갈리아를 정복했지만 갈리아 사람들이 그들을 문명화시켰다고 말이네. 결국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한 위대한 승리였지.” _326p
하지만 마지막 순간, 진리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을 잃고서야 쥘리앵은 깨닫습니다.
“나는 단순히 문명과 야만의 차이에 대해서만 생각했지만 내가 틀린 거야. 진실로 야만적인 건 문명화된 사람들이고 독일인들이 가장 좋은 보기이지. 그들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한 최고의 것이지. 그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후에도 결코 소멸되지 않을 기념비를 짓고 있어. 그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시간 동안 메아리칠 가르침을 주고 있어. 만리우스 히포마네스는 자신의 생각을 교회에 묻었는데 그것은 그의 세상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았지. 나치들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 그들은 거울을 들고 말하지. ‘우리 모두가 이룬 것을 보라.’ 그리고 그건 똑같은 생각이야, 마르셀. 그것이 내 실수였어.” _591p
《스키피오의 꿈》은 이렇게 자신과 시대의 운명에 도전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역사의 비극적 진리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문명의 이름으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야만을 낱낱이 고백합니다.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스키피오의 꿈》을 읽고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문명의 죽음을 고백할지언정 말이지요.
소설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편집과 정보
《스키피오의 꿈》은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한국어판을 내며 몇 가지 장치를 달았습니다. 먼저 복잡한 시대와 인물들을 좀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책 서두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해 두었습니다. 또, 《스키피오의 꿈》에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허구와 뒤섞여 자연스럽게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도록 간단한 ‘주’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책 말미에 ‘역사 해설’을 붙여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을 좀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소설의 주무대인 프로방스와 주변 지역들을 표시한 지도도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 혹시나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라파엘로가 그린 동명의 회화 작품도 소개해 두었고요.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 조그만 배려들이, 《스키피오의 꿈》이라는 깊고 넓은 미궁을 헤쳐나가는 데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키피오의 꿈》에 쏟아진 해외의 찬사들
“괴로울 정도의 정열로 심오한 주제를 파고든 빛나는 작품. 굉장한 야심작이다.” _《데일리 텔레그래프》
“저항할 수 없는 상상력의 힘” _《이브닝 스탠더드》
“사상과 관념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제공하는 지적인 자극과, 스릴러가 주는 본능적 즐거움이 더하여 아름답
게 씌어진 소설. 한번 잡으면 결코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_ 《선데이 텔레그래프》
“창의적이고 장려한 역사소설” _《아마존》
목차
<라파엘로의 유혹>, <티치아노 위원회> 등 미술사 미스터리 연작과 <스키피오의 꿈>, <핑거포스트, 1663>으로 역사 추리소설의 새 장을 열었던 이언 피어스 장편소설. 프랑스의 변방인 프로방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나의 그림 속에 오버랩된 세 개의 시대, 그리고 그들의 꿈과 사랑, 배신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5세기, 흑사병이 휩쓸던 14세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20세기. 소설은 이 세 개의 시대를 오가며 전개되고, 각 시대의 풍광과 에피소드는 모두 프로방스와 그 주변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로마 몰락, 중세 유럽에서 성행한 마니교와 다양한 이단종파, 교황의 아비뇽유수와 흑사병, 제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나치즘의 유대인 학살 등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다.
5세기의 주인공은 갈리아의 귀족 만리우스 히포마네스와 그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철학 스승 소피아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14세기의 시인 올리비에 드 노옌과 그가 사랑하는 하녀 레베카에게로, 또 20세기 프랑스의 고전학자 쥘리앵 바뇌브와 화가이자 연인인 줄리아 브론슨으로 이어지는데….
☞이 책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허구와 뒤섞여 전개되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주를 달았다. 책 말미에 역사 해설을 붙여 작품을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소설의 주무대인 프로방스와 주변 지역들을 표시한 지도를 함께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