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 이문영 장편소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 이문영 장편소설

저자
이문영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출판일
2024-04-05
등록일
2024-08-20
파일포맷
COMIC
파일크기
1KB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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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도달한 듣기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 이토록 숭고한 소설로 승화돼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 _김숨(소설가)

문학의 경계를 흔들어온 이문영 작가의 본격적인 첫 소설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등을 통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문체로 문학의 경계를 흔들고 세상의 경계를 지우는 작가 이문영의 첫 번째 소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이하 《왼오세》)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조세희 작가로부터 “《난쏘공》의 난장이들이 자기 시대에 다 죽지 못하고 그때 그 모습으로 이문영의 글에 살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는 지금껏 말의 길에서 누락된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듣고 생생히 되살려왔다.
《왼오세》는 홀로 남아 자신의 훼손된 감각을 끌어모아 듣기를 계속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되어 들리지 않는 것, 잘못 듣고,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전한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로, ‘이명’을 거쳐 닿을 수 있는 최선, 최대한의 성찰을 묻고 듣고 쓴 작품이다. 폭력과 가난, 극한 노동, 차별과 혐오로 가득한 세계에서 추방된 소리들, 버려진 소리들, 이름을 가진 적 없는 소리들, 이 세계가 잃어버린 소리들이 그의 문장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소리로 포착해낸 이 세계의 몰골, 어떤 울음들의 세계
소설 속 왼쪽 귀의 세계는 실제 세계의 소리, 선명한 소리 즉 현실의 이야기다. 반면 오른쪽 귀의 세계는 이명 세계의 소리, 흐릿한 소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다. 《왼오세》는 이처럼 두 세계로 나뉜, 두 세계를 오가는, 대립하다가도 서로 침범하며 포개지는 실제 소리와 이명이 현실과 비현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과 사건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사연들과 얽히고설키며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실상, 즉 ‘이 세계의 몰골’을 생생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여느 소설들이 그렇듯 《왼오세》에도 작가의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그가 함께 통과해온 시간이거나, 그가 취재하고 기록한 사건들이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곳곳에 뿌려져 있다.
이 소설에는 이명의 이미지들이면서 한국 사회를 은유하는 여러 상징들이 등장한다. 그 상징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소리와 사건들과 만나며 이 세계가 어떤 소리를 품고 어떤 소리를 몰아내는지 드러낸다. 세월호, 이태원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이주노동자, 추방입양인, 무연고 사망자, HIV 감염인 등 세상의 소리 전달 경로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배제된 이명들, 어떤 울음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왼쪽 세계와 오른쪽 세계가 선명하게 맞닥뜨리거나 흐릿하게 조우하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가 ‘이명’을 다루는 방식을 상징한다.
서로의 고통을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에서 소리의 길을 빼앗긴 존재들이 내지르는 비명들. 누군가에겐 들리지 않고, 누군가는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소리들, 그 절박한 목소리들을 하나씩 되찾아 들려준다.

당신의 세계는 어떤 소리들로 채워져 있는가
인간의 귀는 왜 두 개일까? 흔히 입이 하나, 귀가 둘인 이유를 적게 말하고 많이 듣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귀가 두 개인 과학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소리의 방향을 정확하게 감지하게 위해서다. 한쪽 청력을 잃은 주인공은 소리의 방향을 구분하지 못해 자전거에 치여 나뒹군다. 듣고 싶은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 사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는 사실을 그는 거듭 세상과 충돌하며 배운다.
“차이를 인지해야 안전할 수 있었다. 오돌토돌한 소리들을 눌러 매끈하게 만든 세계일수록 위험해졌다. 양쪽을 모두 살피지 않고 한쪽 소리만 들으면 방향 감각이 흐려졌고, 소리의 방향을 혼동하기 시작하면 소리의 진위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귀가 두 개인 이유가 있었다.”(242쪽)
소리에서 소리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이 세계에 공기처럼 가득 들어차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온 소리들. 《왼오세》는 그 세계가 어떤 소리들로 구성돼 있는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삶은 어떤 소리들로 채워져 있는지 질문한다. 그 세계에서 누구의 소리가 가장 큰지, 누가 가청 주파수를 장악하고 있는지, 주파수 밖으로 쫓겨난 소리들은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묻는다.
이 세계의 소리 전달 경로에서 배제되어 이명이 된 소리들, 실종된 소리들, 버려진 소리들, 쫓겨난 소리들을 추적하고 추리하며 ‘이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을 되살려내고, 그들을 이명으로 만든 세계의 “동그랗고 매끈하고 반질반질한” 세계관을 가차 없이 찌그러뜨린다. 소설은 섬뜩하게 묻는다. 당신의 귓속은 몇 데시벨인가. 그 데시벨을 갈아치워 구조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다른 누군가의 귓속에서 구조조정되고 있지는 않은가.
《왼오세》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부하고 은유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시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간편하게 규정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문장들은 다양한 생각의 길을 열어주면서도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상상하게 해준다. 그 문장들은 목청 큰 소리가 넘쳐나는 곳이 아닌, 성대가 잠기고 기척마저 희미한 곳을 찾아다니며 수사하듯 탐색하고 기록하고 이야기로 옮긴다. 이문영의 문장들은 ‘소리가 희박한 쪽’으로 낮게 엎드려 배를 밀고 나아간다.

감각의 열림과 확장과 연결을 통해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
《왼오세》에서는 현실의 소리와 이명을 오가는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문학, 미술, 음악, 신화, 종교, 영화 등을 가로지르는 여러 장르와 작가의 작품들이 얽혀 들어, 소리를 매개로 독자에게 작품을 안내하는 도슨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은 모두 5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형식으로 서술되는 각 장의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단절되고 때로는 느슨하게 연결된 파편들처럼 읽히다가 책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진다.
《왼오세》에는 주인공이 사는 건물과 집에 침입하려는 사람의 시도가 조금씩 이야기를 바꾸며 되풀이된다. 에드바르 뭉크가 대표작 〈절규〉를 변주해 여러 버전의 그림으로 남긴 것처럼, 조금씩 변형되고 뒤틀리는 이야기들이 거듭될수록 피해자의 공포는 점점 독자들의 몸으로 옮겨온다. 그와 동시에 불현듯 ‘나 자신도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느끼며 서늘해진다. 이러한 감각의 역전을 통해, 자신의 감각에 고립되지 않고 타인의 감각에 열려야 나 아닌 존재들을 향한 몰이해와 혐오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음을 이야기는 암시한다.
서로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 지금 우리가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다.

두 귀의 세계로 안내하는 열쇳말

●이명
“심각한 이명의 가장 흔한 원인은 중추신경계로 가는 신호 전달이 막혀 발생한다.”(67쪽)
소리 감지 기관으로 충분한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 뇌는 대체 경로를 통해 본래 소리와는 다른 소리(이명)를 인지한다.
이명은 귀울음. 기존의 소리 전달 경로가 감지하지 못한 비명이 귀를 찾아와 터뜨리는 울음. 배제된 목소리가 이명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왼오세》는 인간의 발성으로 묘사할 수 없는 온갖 이명들을 통해 소리 경로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비명을 듣는다. 알아듣지 못하면 이명일 뿐인 소리들을 알아듣기 위해 모든 감각을 끌어모은다.

●듣기
한쪽 청력을 상실한 《왼오세》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자신의 듣기를 의심한다. 이명과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이 들은 소리들에 확신을 잃는다. 그의 의심은 이 세계의 청력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듣기에 자신이 없어진 뒤로 나는 무언가 듣고 나면 나 자신부터 의심했다. 의심을 거치지 않으면 정말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나는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사실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리는 단순해지고, 확신은 편리해지고, 세상은 완강해졌다.”(300쪽)

●순음과 잡음
주인공의 오른쪽 귓속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청력검사를 받던 중 그 소리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순음’을 잡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여러 이명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흐느끼고 고함지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들에 시달리면서도, 순음이라는 ‘단일하고 깨끗한 소리’를 불신한다.
“단일 주파수로만 이뤄진 순수한 소리(순음ㆍpure tone)란 현실에 없었다. 인류는 여러 소리가 뒤섞인 잡음 속에 살아왔다. 다른 소리를 몰아내고 순음의 세계를 만들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 끝은 폭력과 전쟁이었다. 잡음은 순음으로 이뤄진 청정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순음으로만 이뤄진 끔찍하게 깨끗한 세상의 도래를 막는다. 순수 혈통이 아니어서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던 프리모 레비도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필요하다’고 썼다.”(171~172쪽)


∥줄거리∥

조이섶. 그의 직업은 듣는 사람, 기자다. 누구보다 잘 듣고 정확하게 전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자신이 인터뷰했던 해고 노동자가 보도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기사 때문입니까. 영정 사진 앞에 엎드려 절하며 묻지만, 고인은 말이 없다.
그때부터 시작된 극심한 두통과 이명. 급기야 머릿속에서 종양이 발견되고 그 영향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는다. 그 앞에 놓인 세계가 점점 두 개로 나뉘기 시작한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현실로 이루어진 세계와 이명이 목구멍을 열고 이야기를 게워 올리는 세계.
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할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져 그를 삼켜버린다. 이명과 환청은 극에 달하고, 귀로 듣는 것들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는 범인을 쫓듯 이명의 진앙지를 찾아내기 위해 세상의 온갖 소리를 지독하고 집요하게 파헤치기 시작한다.
추방된 소리들, 밀려난 소리들, 버려진 소리들, 이름을 가진 적 없는 소리들, 이 세계가 잃어버린 소리들. 소리의 길을 빼앗긴 존재들이 그의 귀를 찾아와 비명을 지른다.
‘이명 속 목소리’가 듣기에 확신을 잃은 그에게 말한다. 끈질기게 듣는 것 외에 제대로 듣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듯.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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