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재생 - 공간을 넘어 삶을 바꾸는 도시 재생 이야기
재생도 인생처럼
차근차근, 천천히!
개발에서 재생으로, 도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개발 시대의 논리가 경쟁과 효율이었다면, 이제는 재생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논리와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차근차근 천천히, 작은 규모로 고치고 빈 곳을 채우자. 사람들로 가득한 수도권과 텅텅 빈 지방의 원도심, 사라질 위기에 처한 농산어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 재생의 대상은 도시만이 아니라 우리 삶터 전역으로 확장되고, 재생의 목적은 공간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책에는 개발의 흔적에 허덕이는 도시를 치유하고, 소멸 위기의 마을을 살리는 다양한 비법을 담았다.
도쿄의 벤처회사가 산간 지역에 위성사무실을 연 이유는? / 인구 6천 명이 안 되는 마을이 출산율 전국 1위를 거머쥔 비결은? / 텅텅 빈 원도심에서 4년 만에 청년 창업 사례가 100여 개로 늘어났다고? / 평범하던 군소도시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덕질’의 거점이 되었을까? / 도쿄에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간 청년들이 가꾸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과 해법들
지금은 재생 시대!
더불어 지속가능하기 위한 도시 인문학
재생의 시대가 왔다. 지난 시절 내내 개발을 주장하던 이들이 이제는 재생을 외칠 만큼 도시 재생이 뜨고 있다. 도시 재생과 관련된 법(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관한특별법)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정부가 ‘도시 재생 뉴딜사업’이라는 이름하에 매년 10조원 씩 임기 동안 총 5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할 만큼 도시 재생은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재생’이란 무엇인가? 개발 사업에 투여하던 돈을 재생 사업으로 전환하기만 하면 도시 재생이 되는 것일까?
개발의 시대에서 재생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도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전작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에서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인가?”를 묻고, 《도시의 발견》에서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물었던 도시학자 정석 교수가 이번에는 ‘재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도시의 본질을 탐구한다. 이 책에서 그는 “도시는 무엇이고,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건넨다. 도시를 진정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보다 그 안에서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재생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개발에서 재생으로,
도시에서 삶터로
이 책의 1장과 2장은 도시를 재생하는 방법을 논하기에 앞서 되살려야 할 우리 도시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저자에게 도시는 ‘오랜 개발 시대의 흔적을 아픈 상처로 간직한 생명체’다. 한국이 본격적인 개발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개발 시대의 지상 목표는 하나였다. 도시를 빨리빨리 만드는 것. 소로 밭을 가는 농부 뒤에 15층 아파트가 배경처럼 펼쳐진 압구정동의 사진은 새로운 도시를 바쁘게 만들어내던 이 시대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신개발’이 개발 시대를 앞에서 끌고 갔다면 오래된 마을과 도시를 헐고 새로 짓는 ‘재개발’은 개발 시대의 뒤를 받쳐주었다. 1990년대 도시에 누적된 상처가 한꺼번에 터지며 도시계획에도 대전환이 찾아왔지만, 2002년 이명박 시장 취임 직후 뉴타운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재개발, 재건축 바람은 2000년대를 다시금 개발의 역풍 속에 밀어 넣었다.
개발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도시는 사람의 필요와 입맛에 맞게 탈바꿈할 수 있는 자연 상태의 천연자원이나 도마 위 생선처럼 취급되었다. 저자는 도시를 사물화하는 관성에 맞서서 재생 시대에 필요한 관점으로 도시를 생명체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생명으로서 도시는 마을과 지역, 그리고 더 큰 국토로 확장되고 연결되며, 그러한 도시를 재생한다는 것은 아픈 몸을 되살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수도권에만 집중된 인구, 텅텅 빈 지방의 원도심, 소멸 위기에 처한 농산어촌의 문제를 따로따로 풀 것이 아니라 도시 재생을 ‘삶터 되살림’이라는 보편적인 문제의식 안에서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개발 시대를 지나오며 도시에 누적된 문제를 살피는 데서 시작해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지속가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과 공간을 함께 살리는
삶터 되살림 선언
사람(삶)과 공간(터)이 분리된 게 아니라 함께 어우러진 장소(삶터)로 도시를 바라보면, 삶터 되살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해진다. 저자는 서문에서 ‘삶터 되살림 5원칙’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재생의 목표는 삶의 되살림이며, 우선순위는 소멸 위기의 지방과 시골과 원도심을 살리는 데 있다. 그리고 기존 도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내부를 채우는 방식으로 재생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고,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와 협력, 상생의 접근법을 취하며, 개발 시대의 ‘한꺼번에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차근차근’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3장과 4장은 이러한 삶터 되살리기에 나선 일본과 한국의 다양한 사례를 담았다. 일본은 인구 감소에 따라 지방 소멸이 가시화되면서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온 도시 재생 정책을 ‘지방 창생’ 정책으로 전환해 실행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지방 창생 정책으로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는 ‘지역부흥협력대’와 심각한 세수 격차로 재원 고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에 돈을 보내는 ‘고향납세제도’를 소개한다. 그 밖에도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이자 2013년 OECD가 선정한 콤팩트시티에 뽑힌 작은 도시 도야마의 비결, 한적한 산간 마을에 위성사무실을 운영하는 도쿄 벤처회사의 사정, 인구 6천 명에 불과한 존재감 없던 마을이 합계출산율 전국 1위를 거머쥐게 된 이유, 빈집과 창업 프로그램을 활용해 고령화와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주변 도시와의 상생 전략으로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모았다.
지방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 재생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다. 4장에서는 작은 소도시와 시골마을에서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지방 재생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4년 단 하나에 불과했던 청년 창업 사례를 4년 만에 100여개로 늘려 죽어가던 원도심을 되살린 청년복덕방, 농사짓는 법을 넘어 마을공동체를 일구면서 ‘농촌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홍성 홍동마을의 풀무학교, 완주군 삼례읍에서 ‘지속가능한 덕질’을 모토로 지역 청년들을 규합하고 있는 하워드인플래닛, 그밖에도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만난 ‘지방에서 천천히 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는 곳’을 ‘삶의 공간’으로 바꾸는
저성장, 인구 감소 시대의 전략
저성장과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지금, 도시는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개발에서 재생으로, 도시에서 삶터로, 생각의 무게중심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재생 시대의 궁극적인 삶의 지향을 ‘행복’에서 찾는다. 개발 시대의 시대정신이 국가나 도시의 성장이었다면, 재생 시대의 시대정신은 시민의 행복에 있다. 행복은 국가에 맡기고 가만히 기다린다고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내 몸 건강에서부터 시작해 스스로 찾고 지켜내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비결을 담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발에서 재생으로, 도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개발 시대의 논리가 경쟁과 효율이었다면, 이제는 재생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논리와 철학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삶터 되살림’은 한마디로 큰 규모의 신개발, 재개발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수도권의 무심하게 남아도는 잉여를 지방에서 절실하게 채워지길 바라는 결핍과 연결시키는 일이다. 차근차근 천천히, 작은 규모로 고치고 빈 곳을 채우자. 사람들로 가득한 수도권과 텅텅 빈 지방의 원도심, 사라질 위기에 처한 농산어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 재생의 대상은 도시만이 아니라 우리 삶터 전역으로 확장되고, 재생의 목적은 공간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