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광복과 분단,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 신자유주의와 시민운동…
역사의 분수령에서 우리는 어떤 논쟁을 벌였고, 어떤 역사를 선택했는가?
이 책은 사회학자 김호기 교수와 역사학자 박태균 교수가 194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논쟁들을 조명하고 평가한 것이다. 논쟁을 선정한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는 사회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과 담론에 대한 논쟁이다. 둘째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이뤄진 논쟁이다. 셋째는 현재적 의미가 큰 논쟁이다. 이 책에서 다룬 한국 현대사와 논쟁들은 결코 과거로서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영향 아래에서 살고 있고,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책의 제1부에서는 광복, 정부 수립, 분단 체제의 형성과 연관된 논쟁들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한국의 시공간이 만들어진 계기를 추적한다. 제2부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논쟁들을 돌아보고,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당시 정치·외교·문화·경제의 틀을 되짚어본다. 제3부에선 민주화 시대의 개막과 진전을 알리는 논쟁들을 살펴본다. 광주항쟁의 진실 공방에서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을 둘러싼 논쟁까지를 분석한다. 제4부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논쟁들을 주목한다. 제4부를 이루는 논쟁들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루는 이슈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격하게 공감하거나 정반대의 입장에서 논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70여 년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고난의 시기도 있었고 영광의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고난과 영광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늘 논쟁을 통해 쟁점을 분명히 하고, 더 나은 해법을 찾아왔다. 이제 우리 사회 앞에는 새로운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 도전들은 우리 국민을 ‘논쟁의 광장’으로 초대할 것이다.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가 ‘걸어온 길’을 성찰한 이 책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모색하는 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이며, 따라서 모든 역사적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적 논쟁 속에서 살고 있는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가 남긴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그 역사에서 행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동시에 이룩한 성취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개인이든 사회든 역사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다. 역사적인 논쟁만큼 건강한 사회를 위한 자양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진행된 논쟁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룬 광복 이후 40개의 논쟁들은 우리 사회가 지나온 길을 성찰하게 하고,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게 하며, 나아갈 방향을 숙고하게 한다.
제1부는 1945년 광복에서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 우리가 어떤 국가와 사회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매우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를 겪어야 했는지 살펴본다. 남북 분단, 정부 수립, 한국전쟁은 우리 현대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온 역사적 사건들이며, 이를 둘러싼 논쟁들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제2부는 1961년 5·16군사정변과 유신 체제의 시기 동안 한국사회를 뒤흔든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지금도 뜨거운 쟁점을 이루고 있는 이슈다. 이 점을 주목해 이 책은 박정희 정부가 정치·경제·교육 정책을 어떻게 추진했고 이 정책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다. 제2부를 읽고 나면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가 어째서 현재까지 길고 짙게 드리워져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사회를 조명해보는 제3부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운 나날들이었던 민주화시대를 다루고 있다. 광주항쟁, 사회구성체론, 민주화 이행, 북방정책, 신세대,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그리고 분단체제론 등은 민주화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과 개념 그리고 담론을 둘러싸고 진행된 논쟁들을 살펴보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민주화시대를 이해하는 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제4부는 1997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사회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햇볕정책에서 수저계급론까지,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논쟁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게 될 것이다. 특히 제4부는 지금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 자신이 논쟁의 당사자들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성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금기시되었던 논쟁들과 정치적인 이유로 변질되어버린 논쟁들:
‘남남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세 가지 흥미로운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첫째는 한때 논쟁거리로 삼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논쟁이고, 둘째는 과거에 종결된 듯 보였던 논쟁이며, 셋째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는 알고도 외면했던 논쟁이다.
먼저 주목할 것은 논쟁으로 삼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던 논쟁이다. 이에 관해선 더글라스 맥아더에 관한 ‘8장 맥아더 재평가 논쟁’이 눈에 띈다. 이 책은 미국 합동참모본부사가 발간한 《한국전쟁》 등의 자료를 통해 ‘중공군의 참전을 부른 섣부른 북진 전략에 맥아더의 책임은 없는가’, ‘전세 판단 착오는 어떻게 향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대외 군사·외교 전략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었는가’와 같은 이슈들을 살펴본다.
과거에 종결된 듯 보였던 논쟁으로는 ‘18장 유신 체제 논쟁’이 있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와 유신 체제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와 시장 왜곡은 어떠한 경로를 거쳐 1980년대 초반 한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는가’, ‘경제개발계획의 독재정권(1962~1986)보다 민주화 이후(1987~) 정부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쟁점들을 소개한다.
한편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결국에는 논쟁 자체가 변질된 역사적 논쟁도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5장 친일파 논쟁’, ‘14장 한일 국교정상화 청구권 자금 논쟁’, ‘37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쟁’을 꼽을 수 있다. 친일파 논쟁의 한 축을 제공했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둘러싸고 친일 세력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 사회의 주류가 비주류에 의한 청산 작업을 다시금 청산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논쟁들은 읽는 이의 머리를 뜨겁게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해서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엇박자를 낸 이유를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미국 정부의 세계 군사 전략을 조명해본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국정운영과 정부정책에 관한 역사적 논쟁들: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과 복지정책의 문제점과 우리가 나아갈 길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국정운영과 정책에 관한 역사적 논쟁들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저자들은 이와 관련된 여러 논쟁을 제시한 후, 우리 사회가 양분되고 극단적으로 대치함으로써 사회발전이 지체되고 대외적으로 고립되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6장 북방정책 논쟁’과 ‘33장 햇볕정책 논쟁’에서는 국가의 중대한 정책 중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했다가 좌초되어버린 국정운영과 그 쟁점들을 다뤄본다. 특히 ‘26장 북방정책’에서는 북한과 NLL 합의를 이뤘던 남북 선언문이 어째서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지 못하고 결국 국회 비준에 실패했는지를 살펴본다. ‘33장 햇볕정책 논쟁’에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 대북사업과 정책의 투명성 실종 등에 얽힌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과 그에 따른 여러 이슈들을 검토한다.
저자들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과 사회적 논쟁을 재조명한 후, 정책이 정권에 따라 완전히 바뀌고 심지어 한 정부 아래에서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대북정책은 지지도와 그 평가가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서 양극단을 오가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과거 대북정책의 공과 과를 명확히 짚어보고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 정부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추진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첨예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복지정책과 균형발전이다. ‘32장 생산적 복지 논쟁’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서유럽의 ‘제3의 길’ 노선을 수용한 과정을 분석한 다음, 외환위기 이후 한국 복지정책을 두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이다’라는 주장과 ‘국가책임주의를 강화한 정책이다’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이유를 살펴본다. 또한 유럽 국가들의 복지모델과 성패 여부를 돌아보고, 복지국가로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덧붙여 ‘36장 지역균형발전 논쟁’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불균형발전을 주목하여 정권적 과제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로서의 균형발전을 강조한다.
현대 한국을 관통하는 ‘세대론’과 ‘문화’의 논쟁들:
청년문화에 대한 엇갈린 해석과 세대갈등의 해결책
한편 이 책은 역사의 물꼬를 바꿨던 사건들뿐 아니라 그 역사의 주체를 이뤘던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들도 담고 있다. 광복 이후 진행된 ‘세대 논쟁’은 그 기원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10장 전후 문학 세대 논쟁’은 문학계 신·구세대의 대표격인 김동리와 이어령이 벌였던 세대논쟁과 그 의의를 다룬다. 또한 ‘19장 청년문화 논쟁’은 1970년대 청년문화가 ‘탈권위 대항문화였다’는 주장과 ‘퇴폐문화에 불과했다’는 상반된 주장을 살펴본다. ‘27장 신세대 논쟁’은 개인주의·탈권위주의·감성주의·소비주의라는 관점에서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신세대가 우리 현대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였다고 파악한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과 답을 찾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역사 발전이 도전과 응전으로 이뤄지듯, 문화적 성숙은 기성세대의 관성과 이에 맞서는 젊은 세대의 도전을 통해 성취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나아가 바람직한 세대 논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포위되고 속박된 젊음을 기성세대가 먼저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