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
침놓고 약 짓기에 앞서 환자의 마음속 사연을 끌어내고,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한의사.
그가 들려주는 ‘어설퍼서 더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익을 좇다 보면 간절해지고, 간절해지면 늘 몸이 긴장하게 된다. 긴장이 쌓이고 쌓여 몸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와도 사람들은 쉼을 유보하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덜컥 병에 걸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진작 쉬어야 했음을……. 하지만 막상 시간이 주어진 뒤에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 선 사람들에게 이기웅 원장은 말한다.
“어설퍼지세요. 그러면 마음이 쉬어집니다!”
갈수록 정교하고 완벽해져야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설퍼지지 않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살아보라니,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가 이런 독특한 처방을 내리게 된 것은, 긴 병 끝에 지칠 대로 지쳐서, 혹은 뚜렷한 이유 없는 질환에 시달리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원을 찾은 사람들의 진짜 환부가 몸이 아닌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부터다. 그때부터 그는 환자들에게 침놓고 약을 지어주기보다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여행하며 참된 쉼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데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쉼이 제1의 명약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몸의 긴장을 풀고 제대로 쉬기 위해서는 우선 조금 어설퍼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그가 환자들과 대화하고 여행하며 환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참존재와 만나도록 주선해줌으로써 마음으로부터 몸의 병을 치유해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익의 관점이 아닌 즐거움과 감동, 어설픔의 관점으로 삶의 시선을 바꿨을 때 찾아오는 놀라운 변화에 대해 들려준다.
“그대가 아프기를 바랍니다.
아프다는 것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완벽을 추구하는 프로들의 경기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삶의 형태를 승리와 패배로만 인식하는 게임의 룰 속에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전사로 성장한다. 시험에서 이기고 달리기에서도, 노래와 그림, 심지어는 외모에서도 친구를 이겨야만 한다. 그렇게 완벽해져야만 세상이 주는 이익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끝없이 긴장해왔다. 팽팽하게 조여진 바이올린의 현이 툭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병이 들고 아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기웅 원장은 “병이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프다는 것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 우리는 비로소 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병을 앓게 된 후에 오히려 더 착해지고 행복해진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곤 한다. 그들은 아픈 뒤에야 비로소 인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듯,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더 느슨하고 더 어설프게 살기를 자처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프기 전에도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조금 어설퍼져보자.
몸의 긴장이 ‘이완’이라는 형태로 풀어진다면 정신의 긴장은 ‘어설픔’이라는 형태로 풀어진다. ‘반드시’, ‘기필코’, ‘무조건’이라는 어휘가 모두 사라진 삶, 이익과 손해라는 이분법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평화가 깃들게 마련이다. 어설픔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