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13-4
인생의 영원한 중대사인 사랑과 결혼 그리고 분투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모두 사랑과 결혼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으며, 여주인공들이 현실적인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결혼을 성취하는 결말로 끝난다는 점 때문에, 오스틴의 작품은 낭만적인 사랑을 다룬 로맨스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오스틴의 시각은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우리에게 〈이성과 감성〉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제인 오스틴 가문에 따르면 서간체 소설인 〈엘리너와 매리앤 Elinor and Marianne〉라는 제목이 붙은 서간체 소설을 개작한 것이다.〈엘리너와 매리앤〉은 1790년대에 씌여 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때는 작가가 나중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첫인상〉이라는 소설을 썼던 무렵이다. 오스틴은 1809년 내지 1810년에 이 작품을 개작해서 1811년에 마침내 익명으로 출판했다.〈이성과 감성〉은 초턴에서 쓴 초기 스티븐턴 시기의 첫 소설이며 대중에게 빛을 발한 첫 소설이다. 〈이성과 감성〉에도 서로 정신적인 공감대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각기 배우자 이외의 다른 관심사에서 즐거움을 찾음으로써 간신히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미들턴 경 부부와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아내는 무시당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아둔한 파머 씨 부부의 무미건조한 결혼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에게는 결혼 이외의 출구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윌러비의 경우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재산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결혼이 당연시되던 시절인 만큼, 결혼에는 두 당사자의 애정 이외에 다른 요소들이 더 많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으니 피할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오스틴은 그와 같이 결혼을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사람들과 달리, 자존과 품위를 꿋꿋이 지키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랑과 결혼을 성취하는 여주인공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치열한 싸움에 다름 아니며, 그 과정은 그들에게 인격적인 성숙과 도덕적인 성장을 가져다준다. 오스틴의 소설에서 행복한 결혼의 성취보다 본질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