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일본 한 바퀴
그래서 그 여름, 나는 바이크 한 대에 의지해 불쑥 일본으로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흰 머리에 나이 쉰이 넘은 그를 보며 누군가는 이제 청춘은 지나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은 분홍빛 뺨이 아니라 푸른 마음이라면 그는 청춘의 조건에 적격이다. 어느 날 여행이 하고 싶어 오토바이 한 대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 30여 년 전 한 번의 만남이었던 일본인 친구들, 안면도 없던 일본인들, 그리고 스스로와의 만남에 마주하며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어찌 보면 《바이크로 일본 한바퀴》는 15박 16일이 아니라 그의 삶 전부를 옮겨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의 전생은 바이크였을 것이다. 그것도 심장 터질 듯,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바이크. 우당당당! 그 엇박의 엔진 리듬에서, 그는 어머니 가슴의 심장 박동을 느낀다. 따스함을 느낀다. 맞다. 이영건은 바이크다. 그는 결코 인생을 가볍게 살지 않는다. 온몸으로, 두 바퀴로 밀며 산다. 47박 48일짜리 ‘유라시아 횡단’에 이은, 일본 열도 종주는 온몸으로 밀고 간, 그 삶의 기록이다. 그의 엔진은 멈추지 않는다. 부당당당, 엇박의 소리를 내며 오늘도 뛰고 있다. 힘차게, 더 강하게 말이다.
- 매일경제 스포츠 레저 기자 신익수 추천사
어디선가 들려오는 먼 북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 이야기를 반복하는 지루하고 고달픈 일이 아니냐고도 묻는다. 이미 여행은 지나왔고, 경험이야 다시 돌릴 수 없는 것이지 않냐는 말이다. 그 말에도 다소 일리가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이미 지나간 여정 속의 자신이 아닌, 아직도 그 여정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든다. 일상에서 벗어나 바이크에 몸을 싣고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었다.
한동안은 그때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모험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시금 모험과 여행에 대한 갈증이 들었다. 나와 동년배지만 언제나 청춘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 ‘먼 북소리’를 다시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바이크를 타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결국 2010년 여름, 나는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가 닿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떠나자. 바이크를 타고 일본으로 가자!
홀로 떠난 바이크 여행지, 일본
일본을 택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단순하게는 일본이 바이크로 달리기에 수월한 조건의 나라라는 것도 하나다. 유라시아 횡단의 경우 동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바이크가 파손되거나 부상을 입더라도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동료 없이 혼자 떠나는 길이다. 때문에 바이크와 나 자신 모두에게 부담이 심하지 않은 지역을 택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가까운 나라 일본이 사고나 돌발 상황에 대비한 사회적 시스템도 잘 되어 있고, 도로 정비도 훌륭해서 혼자 바이크로 달리기에 제격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일본이 내게 어느 정도 친숙한 나라였다는 점이 있다. 내게는 도쿄, 나고야, 오사카, 센다이, 시모노세키 등 일본의 큰 도시들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청춘은 지나갔지만 추억은 여전했다
일본 바이크 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연유는 ‘30여 년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을 찾아보고픈 마음’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한일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와세다 대학교 학생들이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약 열흘간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당시 나는 영문학과 학생이었는데, 그 친구들과 지내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일어일문학을 부전공으로 택했다. 당시(1978년) 나와 친구들은 고속버스를 타고 설악산, 울진, 부산, 광주 등 국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는 태생적으로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