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여자 : 위픽 시리즈
독자들을 추악한 현실 앞으로 밀어붙이는 두려움 없는 서사
“같이 나자빠져 뒹굴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소설가 최현숙의 소설 《창신동 여자》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최현숙은 저서 《할배의 탄생》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등 돌봄·빈곤·페미니즘을 넘나드는 왕성한 저작을 펼쳐온 생애구술사 작가이자, 지난해 첫 장편소설 《황 노인 실종사건》을 발표한 ‘신인’ 소설가이다. 《창신동 여자》는 요양보호사 및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했고, 가난하고 ‘집’(갈 곳) 없는 사람, 특히 여성 홈리스의 생을 ‘듣고 적어온’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반빈곤 활동가인 최현숙의 주제가 고스란히 응축된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두려움 없는’ 서사가, ‘눈곱’ ‘눈물’ ‘콧물’ ‘침’ ‘똥오줌’이 흐르는, 더럽고 폭력적이고 열악하고 혐오스러워 직시하기 힘든 빈곤의 민낯 앞으로 독자들을 밀어붙인다.
요양보호사 ‘정희’는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명수’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날부터 명수의 동거인인 ‘지연’의 걸리적거리는 ‘시선’을 느낀다. “뇌경색으로 두 차례 쓰러져서 오른쪽 편마비. 고혈압, 당뇨병, 곧 투석으로 이어질 신부전증, 전립선 비대증, 뇌출혈성 치매 초기. 국민기초수급자, 의료보호 1종, 지체장애 중증, 노인장기요양 2등급. 방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5만 원. 재개발 철거 예정 지역. 도시가스와 냉방 시설 없음. 난방은 프로판가스, 취사는 휴대용 가스버너. 부엌과 욕실 없음. 마당 귀퉁이에 공용 재래식 화장실”(13쪽)로 파악되는 명수의 여건에 비해, 지연은 “의료보험증은 고사하고 주민등록 자체가 말소되어”(48쪽) 주부습진 약 하나 의사에게 처방받기 어려운 미등록 상태. 정희는 클라이언트인 명수보다도 “하등의 공적 권리가 없는 여자”(83쪽) 지연의 시선을 수시로 의식하며 그의 마음을 사보려고 노력한다. “처음부터 여자가 더 신경 쓰였고 여자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돌봄 대상자는 노인이었지만, 내겐 일찌감치 ‘그 여자네 집’이 되었다”(48쪽). 그러나 엇갈리는 시선만큼이나 좀체 좁혀지지 않는 두 여자의 거리. “같이 나자빠져 뒹굴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는 절대 길바닥에 나가떨어지지 못하는 여자다. 잠깐 같이 나자빠져 있는 건 쓸데없는 연민임을 여자도 나도 안다”(90~91쪽). 어느 날 명수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뒤 지연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미등록 상태의, “하등의 공적 권리가 없는 여자” 지연은 어디로 갔을까.
몇 해 전 한 북토크에서 최현숙은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맨날 떠오르는 게 내 인생이라, 계속 내 얘길 쓴다”고 말한 바 있다. 노년 연구자 김영옥과의 인터뷰에서는 남의 인생을 듣고 그걸 해석하는 과정이 자기 해명의 과정이 되었다며, 이제 소설로 넘어가 팩트 중심의 이야기를 비틀거나 틈을 내면서 의제들을 꺼내고 싶다고 밝혔다(《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이 작품에 붙인 ‘작가의 말’에는 “빈곤 판에서야말로 사회적 위치니 교양 나부랭이 때문에 덮어두고 절대 꺼내지 않는 내 속 혐오와 역겨워함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빈곤 판으로 들어갈수록 … 내 속 지옥도 더 확인한다”(110쪽)고 남겼다. 《창신동 여자》는 남의 생을 들여다보며 누구보다 ‘내 안의 지옥’을 치열하게 ‘확인’ 해온 작가가, 생의 엄연한 위계 차이와 결코 ‘마음을 살 수 없는’ 관계의 거리, 그리고 쉬이 해결되지 않는 자기 안의 숙제에 관해 쓴 작품이다.
얼마 전 한 여성 홈리스의 비극적 부고가 뒤늦게 알려졌다. 그의 생사는 그가 여성이고 홈리스이고 직계 및 방계 가족과 연결이 끊긴 무연고자로 여겨졌기에 방치됐고, 제대로 해명되지 못했다. 미등록 상태로 사라져버린 ‘지연’이 스친다. 《창신동 여자》는 독자의 발을 땅에 붙이는 작품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최현숙 소설에서 바랄 것은 바로 이 점이다.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50권의 책으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위픽’을 통해 공개된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한다. 3월 8일 첫 5종을 시작으로, 이후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하며 1년 동안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또한 책 속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소설 한 편 전체를 한 장의 포스터에 담은 부록 ‘한 장의 소설’이다. 한 장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