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전쟁 - 국익 최우선 시대, 한국의 운명을 바꿀 6개의 전장
한국은 지금 위험하다!
끊임없이 격화되는 기술전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가?
전 세계의 기술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아마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술전쟁은 기업과 기업의 대립에서 시작되었으나 기술혁신과 함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지금은 여러 국가들이 뭉친 진영과 진영의 대립으로 변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기술과 무역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나?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6개의 주요한 전장을 소개한다. 이 6개의 전장, 즉 6개의 배틀필드(battle field) 중 3곳은 한국이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고, 다른 3곳은 절대로 패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먼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3곳은 제조 기술과 공급망 등으로 대변되는 피지컬 배틀필드, 네트워크와 인공지능 등의 디지털 배틀필드, 인공위성과 우주 인터넷 등의 스페이스 배틀필드이다. 이곳에서는 승자가 자국에 유리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리고, 패자는 지금까지의 규칙을 버리고 승자가 정한 새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승자독식의 배틀필드로 패자가 부활하기 매우 어려운 곳이다. 절대로 패해서는 안 되는 3곳은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글로벌 특허 배틀필드,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글로벌 스탠더드 배틀필드, 스카우트라는 이름의 인재 유출이 이루어지는 글로벌 인재 배틀필드이다. 이 3곳은 승자독식은 어렵지만 최소한 지지 않을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
윤태성 교수는 이 6곳의 전장에서는 “퍼스트 무버는 못 되더라도 퍼스트 그룹에서는 벗어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기술전쟁에서 한국은 승리가 아닌 생존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국가들이 모두 전력질주를 하고 있기에, 한국 역시 전력질주를 해서 퍼스트 그룹에 머물러야 한다. 퍼스트 그룹은 한 번 탈락하면 다시 끼어들기 어렵고, 퍼스트 그룹에 있어야만 퍼스트 무버의 자리 역시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가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의 세계,
탈락하면 다시 올라갈 수 없는 전장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을 찾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전쟁을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패권전쟁으로만 생각한다. 한국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치겠지만 양쪽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전쟁은 단순히 패권의 경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특허나 표준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나라에도 매우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특허 21만 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기업들 중에서도 특허 출원 수 10권 내에 항상 든다. 그래서 특허를 둘러싼 싸움에서 안전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1000개, 내연기관 자동차는 3만 개, 전기 자동차는 1만 개 수준의 부품들로 구성되기에 상품에 필요한 모든 특허를 하나의 기업이 보유할 수는 없다.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스마트폰 하나에 25만 개 이상의 특허가 필요할 정도다. 그 결과 특허 침해 소송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없으며, 미국이든 중국이든 보유한 특허만으로 제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특허를 가진 나라와 협상을 해야 한다. 또한 기업끼리 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풀을 만들거나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특허 침해 소송에 걸린다. 삼성전자는 최근 5년간 미국에서만 300건이 넘는 소송에 휘말렸다. 1주에 1번꼴로 소송을 당한 셈이다.
표준을 둘러싼 싸움 역시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표준에서 패배할 때 우리는 우리 것조차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 역시 자칫하면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할 뻔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먹는 파오차이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뒤 바로, 혹은 끓인 뒤 발효시킨 식품으로 우리의 김치와는 제조방법이 다르다. 국제표준화기구는 2020년 ‘파오차이 표준’을 제정했는데, 대부분의 절인 채소가 해당된다. 그런데 파오차이 표준에 대해 정리한 문서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이 문서는 kimchi에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김치에도 적용되었다면 해외에 수출할 때, 혹은 한국에서 팔 때도 김치 대신 파오차이로 표기해야 한다. 김치와 파오차이가 다르다고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치의 국제표준이 이미 제정되어 있었기에 파오차이에 이름을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과학기술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가능했다
한국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방향을 찾아야만 한다!
기술전쟁이 이렇게 격화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과연 믿고 있을까?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답한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과학기술로 인해 다음 세대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한국인이 답한 평균은 6.91로 매우 낮다. 답변한 169개국 중 1위는 8.52의 중국, 2위는 8.02의 독일이었다. 일본은 7.67, 미국은 7.09로 모두 한국보다 높다. 제조강국 중에선 한국이 단연 가장 낮다. 다음으로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을 더 건강하고, 더 쉽고, 더 편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까?”에 대한 답변에서도 한국은 7.12로 여전히 낮다. 1위는 역시 중국으로 8.63, 2위는 일본으로 7.60이며 독일은 7.16, 미국은 7.09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연구개발비는 2023년 기준 30조 원 이상이고 GDP 대비 연구비 투자 비율은 세계 1위 수준이다. GDP가 세계 10위 수준이니 살림살이 규모에 비해 과학기술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거는 믿음과 기대는 매우 낮다.
윤태성 교수는 제조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뒤, 소프트웨어 벤처를 창업하고 경영하면서 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몸과 머리로 직접 경험했다. 이 과정 속에서 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이 기술의 혜택을 보는 이면에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는 특히 요즘과 같은 패권 경쟁 속에서 승자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기술이라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이 이 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술전쟁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든 한국은 과학기술의 힘을 믿고, 혁신을 계속하며, 인재를 품에 품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전쟁 상황 속에서 우리의 생존 방향을 찾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