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가려진 세상 - 생각실험으로 이해하는 양자역학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고 나서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자연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면 배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존 엘리스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이와 같은 말을 남겼다. 자연이 우리의 이해와는 다르게 행동한다니, 무슨 뜻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양자역학이 쥐고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자연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이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아마도 양자역학의 이론이 주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설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우연으로 뒤덮인 기묘한 세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그친다는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에서는 합리적인 것이 먹히지 않는다
- 존 스튜어트 벨
인간의 사유체계는 그 인간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말 과학자들은 뉴턴과 맥스웰의 수학적 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예측으로 그 당시 인식하는 세상을 완벽하게 설명하기 직전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런 자신감에 충만하게 된지 얼마 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던,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기존의 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양자역학도 세상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수학이 뭔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완벽한 수학이지만 그저 수학일 뿐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양자역학이 개념적으로 미완성이고 기초부터 새로 기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학은 매일매일의 상식을 조금 더 정교하게 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과학은 매일 일어나는 일을 조금 더 정교하게 기술하는 것에 불과하다. 양자역학이 “왜”라는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자면, 어렵고 난해한 양자역학도 결국 우리의 일상을 설명하는 학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목표는 양자역학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실험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석이 분명하지 않은 수학을 쓰는 대신,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이상한 일을 확인하고 나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문제인지를 따져볼 수 있다.
『우연에 가려진 세상』은 한걸음씩 걸음마를 떼어가듯 나아가는 사고실험 과정에서 모르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이해가 시작될 것이다. 이 세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인식 체계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