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종말 이후의 사랑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작가 김연수가 짧지 않은 침묵을 깨고 신작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한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여섯번째 소설집이다. 그전까지 2~4년 간격으로 꾸준히 소설집을 펴내며 ‘다작 작가’로 알려져온 그에게 지난 9년은 “바뀌어야 한다는 내적인 욕구”가 강하게 작동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도 바뀔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진”(특별 소책자 『어텐션 북』 수록 인터뷰에서) 시간이었다. 안팎으로 변화를 추동하는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연수는 소설 외의 다른 글쓰기에 몰두하며 그 시간을 신중하게 지나왔다. 변화에 대한 내적인 욕구와 외적인 요구는 작가를 어떤 자리로 옮겨오게 했을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작가가 최근 2~3년간 집중적으로 단편 작업에 매진한 끝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김연수의 변화된 시각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김연수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시간을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우리가 현재의 시간을, 즉 삶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설득해낸다. 특별한 점은 그 가능성이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떠들썩했던 1999년 여름, 동반자살을 결심한 스물한 살의 두 대학생은 뜻밖의 계기로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 『재와 먼지』를 접한 뒤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고(「이토록 평범한 미래」), 아이를 잃고 아득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한 인물은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바다 앞에서 이백 년 전에 그 바다를 지난 역사 속 인물인 ‘정난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난주의 바다 앞에서」). 그뿐 아니라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마치 이야기가 현재의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험하는 신중한 관찰자처럼. 그렇게 이야기와 삶이 서로를 넘나들며 아름답게 스며드는 과정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왜 어떤 삶은 이야기를 접한 뒤 새롭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면 왜 삶에 충실해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지닌 힘을 끝까지 의심에 부친 끝에 도출해낸,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젠가 세상의 모든 것은 이야기로 바뀔 것이고, 그때가 되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게 되리라고 믿는 이야기 중독자”(「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김연수의 각별한 결과물이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러
가장 좋은 미래, 그러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소설이 시간을 상상하는 여덟 편의 방식과
이야기가 우리 삶을 바꾸어내는 경이의 순간
세계의 끝과 사랑의 시작이 어떻게 함께 놓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미래’를 키워드로 두 개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첫번째는 1999년 여름에 일어난 ‘나’와 ‘지민’의 이야기다. 스물한 살의 ‘나’는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지민과 같이 외삼촌이 편집자로 일하는 출판사로 향한다. 출간이 금지되어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장편소설, 그러니까 지민의 엄마가 자살하기 전에 쓴 『재와 먼지』가 어떤 책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평생 책만 읽어온 외삼촌은 1970년대에 나온 그 책을 떠올리고는 내용을 설명해주는데, 두 사람은 줄거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여기서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에는 한 연인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하는 시간의 끝, 즉 사랑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정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동반자살을 한 그날이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 되고, 자고 일어나면 그 전날이 되는 것이다.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지민이 놀란 이유는 바로 그 줄거리가 자신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해 여름 동반자살을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계획을 들은 외삼촌은 『재와 먼지』에 대해 이어서 설명한다. 그 소설에서 연인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다보면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자신들이 얼마나 기쁘고 설렜는지도.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두번째 삶에서 그들은 그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먼저 경험한다. 미래,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과거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동안 두 사람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23쪽) 깨닫게 되고, 그 끝에서 시간은 다시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외삼촌은 긴 얘기 끝에 두 사람에게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29쪽)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는 조금 더 긴 시간의 차원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가 병세가 심해진 뒤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혼잣말을 하는데, 그 대화에 ‘바르바라’라는 세례명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말을 듣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출판사에 다니는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녹취해 책으로 만드는 기획을 진행하다 유야무야된 적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바르바라’가 있었나 싶어 녹취 원고를 열어 검색해보고, 할아버지가 말하는 바르바라가 바로 할아버지의 막내 여동생, 그러니까 1949년 할아버지가 북한의 수도원에 있을 때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 당한 막내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일로 할아버지는 ‘영혼이 완전히 폐쇄되는’ 고통을 겪고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고통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할아버지는 그 속에서 다른 바르바라의 이야기들을 통해 삶을 지속해나갈 동력을 찾아낸다. 그것은 평생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병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성사를 받아 1850년에 죽은 또다른 바르바라에 대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1980년에 나온 책에 실려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보다 50년 전에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바르바라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1850년의 바르바라가 1949년의 바르바라와, 또 자신과 이야기를 통해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은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231쪽) 소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동생의 죽음에 연루된 한 인물과 할아버지가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을 마련해놓는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그가 있는 상황에서,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안간힘을 써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가 “미래의 우리를 생각하는”(240쪽) 게 불가능하더라도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미래를 기억해야 한다’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 외삼촌의 말을 실행에 옮기듯,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보여주려는 듯 할아버지가 내린 쉽지 않은 그 결정은 뭉클하고 깊은 여운과 함께 행동의 차원에서 ‘미래를 기억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김연수의 서명과도 같은 주제인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 자신의 소설적 영토를 확장해나가려는 작가적 노동이 감지된다”라는 평과 함께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진주의 결말」은 범죄심리학자인 ‘나’와 용의자 ‘유진주’의 이야기를 다루며 사건의 진실을 탐색해나가는 소설이다. 시사 프로그램 <사건의 결말>에 출연한 ‘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혐의가 있는 삼십대 후반의 독신 여성 유진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다. 그는 능동적인 범죄자라기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를 모시며 지내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탓에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수동적인 희생자라고. 그리고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새벽 ‘나’에게 유진주가 보낸 메일이 도착한다. 유진주는 말한다. 아빠가 죽기를 바란 건 사실이라고, 아빠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또한 맞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아빠를 죽인 게 아니라고. 그리고 이때부터 사건을 둘러싼 ‘나’와 유진주의 팽팽한 해석의 장이 열린다. “인간에게 숨겨진 진심이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75쪽)고 생각하는 ‘나’와 “아빠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제가 몰리고 있었다는 게 선생님의 전제인데, 그것부터가 잘못됐습니다. 그러니 그다음의 분석도 죄다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84쪽)라고 반박하는 유진주의 대화가 이어지며 긴장감이 고조되어갈 때, 우리는 소설 초반에 나온 다음의 문장을 의미심장하게 곱씹게 된다. “시간여행자는 어떤 사건을 지켜보고 어떤 사건을 외면할지 결정할 수 있다. 어쨌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결말은 똑같다. 다만 어떤 징검다리를 거쳐 그 결말에 이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71쪽) 유진주가 ‘나’에게 보내온 첫 메일에서 언급한 시간여행자에 대한 그 이야기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각자 그 결말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을 취사선택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어떤 사건을 지켜보고 외면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범죄심리학자인 ‘나’가 선택한 것과 외면한 것은 무엇이고, 용의자인 유진주가 선택한 것과 외면한 것은 무엇일까. 각자가 다른 징검다리를 거쳐 하나의 결말에 이른다고 해도, 그 결말이 정말로 같은 결말일 수 있을까?
「진주의 결말」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살인사건을 경유해 탐색한다면,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연인 사이를 통해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의 의미를 살핀다. 수록작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2014년 4월, ‘나’가 옛 연인 ‘희진’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으며 시작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그 메일에서 희진은 자신에게 벌어진 우연한 일의 연쇄에 대해 설명한다. 한국의 인디 가수를 대표해 일본에 와 있는데 공연에서 자작곡인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부르다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에서 자신을 이번 공연에 초대하기 위해 고생했다고 말하는, 후쿠다 준이라는 오십대의 남자를 만났다는 것. 왜 그렇게 자신을 찾았느냐고 묻는 그녀에게 후쿠다는 10년 전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건 희진과 ‘나’가 아직 연인이었을 때 찾아간 일본 카페에서 당시 희진이 즐겨 듣던 <하얀 무덤>이라는 노래를 주인에게 틀어달라며 시디를 건넸다가 깜빡하고 시디를 그대로 카페에 두고 나온 일과 관련돼 있다는 것. 당시 연이은 실패 끝에 자살을 생각하던 후쿠다가 우연히 그 카페에 갔다가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바로 그 노래를 듣고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것. 그리고 카페 방명록에서 <하얀 무덤>의 가사와 함께 ‘H.J’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는 것. 그래서 그때부터 HJ라는 이니셜을 가진 한국의 인디 가수를 찾았다는 것. 기나긴 설명 끝에 희진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181쪽) 의문형으로 물었지만 우리는 희진이 들려준 후쿠다 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작품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해 겨울에 쓰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말에는 어떤 간절함까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의 단상, 2014」 또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가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연인과 헤어진 지 삼 년이 된 ‘지훈’은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196쪽)다고 여겨왔지만, 우연히 뉴스 사이트에 ‘사랑해’라고 검색해보았다가 나온 기사들의 목록을 보며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211쪽)고 깨닫게 된다. 그 기사들의 목록이란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에게 부모와 친구들이 ‘잊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보낸 사랑의 편지다. 누구도 그 앞에서 사랑의 영원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4년의 김연수가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면, 2020년대의 김연수는 어찌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한 듯 보인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소설가 ‘정현’은 강연 요청을 받아 추자도로 갔다가 30년 만에 우연히 대학 동창 ‘손유미’를 만난다. 대학 시절 추리소설을 쓰는 게 꿈이었던 손유미는 그때의 바람대로 추리소설을 쓰면서 살고 있다.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몇 년 전 아이를 잃고 인생이 크게 한 번 휘청였다는 것. “어떻게 해도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58쪽)는 상황에서 손유미를 일으켜세운 것 중 하나는 언젠가 정현이 들려준 ‘세컨드 윈드’라는 말이다.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를 가리키는 이 체육 용어는 정현의 설명을 따르면 극한의 고통에 이르렀을 때 불어오는 ‘새 바람’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60쪽)
그리고 세컨드 윈드와 함께 손유미가 떠올린 이야기가 바로 정난주에 대한 것이다. 200년 전 멸문지화를 당하고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제주도로 유배를 가야만 했던 정난주는 극심한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할머니가 되도록 오래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정난주가 어떻게 목숨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는지 고민한 끝에 손유미가 도달한 결론은 정난주는 ‘자신이 살아야 아이가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붙잡았으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주의 결말」 속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결말은 똑같다. 다만 어떤 징검다리를 거쳐 그 결말에 이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라는 문장을 상기하게 된다. 결말은 바뀌지 않지만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 현재의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 손유미가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정난주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그리고 그 이야기가 결정적인 순간에 손유미를 일으켜세운 것처럼.
때문에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수록된 8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는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는 말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서 30년 전 정현이 한 말이 오랜 시간이 지나 손유미에게 닿았듯이, 추자도의 한 중학교에서 정현이 아이들에게 “여러분이 살아갈 미래는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오늘이 생각나면 좋겠습니다”(48쪽)라는 말과 함께 들려준 미야자와 겐지의 시가 예상치 못한 순간 누군가에게 닿으리라는 걸 우리가 어떤 의심도 없이 상상할 수 있듯이, 김연수의 이번 소설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넓고 깊은 차원에서 시간을 감각하는 일에 대해,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가 “희망의 방향”(73쪽)을 찾는 일에 대해, 소설이 할 수 있는 가장의 최선의 방식인 이야기를 통해 일깨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