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1990년대 한국영화 -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영화의 모든 것

1990년대 한국영화 -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영화의 모든 것

저자
김형석
출판사
앨피
출판일
2023-08-17
등록일
2023-11-15
파일포맷
COMIC
파일크기
19KB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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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굿바이 ‘방화’, 헬로우 ‘한국영화’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기로 평가받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산업적 환경과 작품·영화인 등을 개괄 정리한 책이다. 한국영화 유산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현재화하는 사업을 펼치는 국내 유일의 영상 아카이브 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KOFA)이 기획하고,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90년대의 역동적인 사회문화적 변화상을 분석한 총론부터 장르 스펙트럼, 영화미학, 스타파워,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문화, VFX 기술 등 1990년대 10년간 한국영화(산업)의 다채로운 지형도를 그려 보인다. 이 밖에도 90년 한국영화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화보와, 영화제작자 14인의 인터뷰를 2부에 실어 당시 ‘영화판’ 밖과 안의 시각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1990년 6월 단성사에서 개봉한 〈장군의 아들〉부터 1993년 〈서편제〉, 그리고 메가히트를 기록한 1999년 〈쉬리〉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한국영화 ‘10년’의 시간은 미국 영화산업의 압박과 충무로 내부의 모순이라는 이중의 도전 아래, 이전의 한국영화사 30년에 맞먹는 변화 속도로 좌충우돌 21세기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향해 질주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

‘한국영화’라는 표현, ‘문화상품’이라는 위상. 지금 우리가 누리는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1990년대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흥행업자들의 토착자본이 대기업과 금융자본으로 바뀌었고, 멀티플렉스가 등장했으며, 인디펜던트independent가 자리잡았다. 비디오 시장이 급성장했고, 케이블TV 시대가 열렸으며,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영화진흥공사는 영화진흥위원회로 바뀌었고, 예술영화 상영관이 영화광 문화 속에서 생존했으며, 국제영화제가 생겼다. 영화 주간지가 생겼고, 사설 시네마테크에 영화청년들이 몰려들었으며, 한국영화의 족쇄였던 검열이 철폐되었다. 또, 스크린쿼터를 둘러싸고 한국영화의 ‘종 다양성’ 담론이 제기되었다. 할리우드 직배 영화가 시장을 장악할 때 기획영화가 등장했고, 자본 혼란기에 대기업 금융자본이 유입되었고, 관객 수가 줄어들 즈음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영화는 가장 중요한 ‘문화상품’으로 떠올랐다.

할리우드에 맞선 영화산업적 성취

1989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에로영화 〈매춘〉과 〈서울무지개〉였다. 불과 1년 후인 1990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액션영화 〈장군의 아들〉이었다. 1990년대는 1970~80년대의 암흑기와 2000년대의 르네상스를 잇는 과도기로서, 한국영화사상 어떤 시기보다도 장르 변화가 많았던 시기다. 아직 영화산업의 규모가 크지 않고 한국영화의 흥행 실적은 전반적으로 저조하여 서울 관객 10만 명을 동원하면 ‘흥행영화’였다. 홍콩영화는 저물고, 할리우드가 직배를 무기로 위세를 떨쳤다. 1990년 직배 영화의 등장은 한국영화의 구체제를 뿌리째 흔들 만한 압도적이었다.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이어진 IMF 구제금융과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한국영화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그 와중에 〈결혼이야기〉가 나오고 〈서편제〉가, 〈투캅스〉와 〈여고괴담〉이, 마침내 〈쉬리〉가 나온 데에는 90년대 한국영화계의 역동적인 ‘도전과 응전’, 그리고 영화산업적·미학적인 〈해피엔드〉가 있었다.

영화청년들의, 영화청년들에 의한

90년대 한국의 흥행 순위 1위 영화는 단연 〈쉬리〉였다. 그 뒤를 〈타이타닉〉과 〈사랑과 영혼〉, 〈아마겟돈〉 등 미국영화가 줄줄이 이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90년대는 할리우드라는 ‘절대강자’의 침입을 영화에 대한 광적인 애호와 자본·산업적 실험으로 사수하고 한국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운 영화청년들의 시대였다. 그들은 영화를 만들 새로운 인력과 자본을 연결하고, 철저한 자료수집과 사전조사 과정을 거쳐 참신한 시나리오를 쓰고, 합리적인 예산과 스케줄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영상산업에 대한 새로운 비전 아래 이를 극장에 배급하고, 무엇보다 극장과 비디오 대여점, 예술영화관과 사설 시네마테크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영화에 대한 사랑을 쌓고 폭발시켰다. 이전 한국영화사 30년에 맞먹는 변화는 바로 이 영화청년들의, 기획자들의, 제작자들의, 감독들의, 엔지니어들의, 배우들의 도전과 실패, 좌절과 성취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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