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로스 리포트 : 위픽 시리즈
경쾌하지만 가슴 서늘한, 뜨거운 심장을 가진 소설가가 전하는 미래에서 온 편지
“누군가 사람을 빈 박스 접듯 접어놓았다.”
최정화의 신작 소설 《봇로스 리포트》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최정화는 2012년 등단한 이래, 《지극히 내성적인》 《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날씨 통제사》 등을 발표하며, “불안의 연금술사”(권여선),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신형철),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에 빠삭한 이야기꾼”(황현경), “세계를 휙휙 가로지르며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하성란), “진정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인물들의 장엄한 기록”(구병모), “말릴 수 없는 ‘이야기 통제사’”(정용준), “결코 낡은 것이 아닌 문장의 박력”(김미정) 같은 호평을 받아왔다.
《봇로스 리포트》는 기후변화와 환경, 노동, 인권, 감염병,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무게감 있는 주제들을 두루 다루면서도 ‘이야기’의 자유자재한 미덕을 잃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꾼’적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SF, 미스터리, 블랙코미디의 문법을 슬쩍슬쩍 묻힌, 한껏 불안을 고조시키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최정화표 이야기들은 무한히 생성되고 증식될 수 있는 연작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실제로 책에 수록된 여덟 개의 이야기 중 네 편이 위픽 연재 시 발표되었고, 네 편은 이후 추가 집필되었다. 제목의 ‘리포트’에서 보듯, 애초 기록이며 보고의 형식을 띤 이 이야기들의 ‘비밀’을 읽어내고 연결해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2030년대, 봇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다 헤어진 사람들이 ‘디봇’이라고 불리는 우울증에 걸린다. 애니멀 봇 판매원인 ‘태기’는 고장 난 반려동물 봇을 수리해달라고 호소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한다. 구형 기사 봇 딘의 운전으로 출근한 ‘창수’는 회사로부터 별안간 문전박대를 받는다. ‘준영’은 수영장 안전요원에게 사랑 고백을 하려던 날 그녀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세 살 때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아리’는 구식 운동 봇 하루 2.0과 카포에라를 연습한다. 학습 봇 제니를 잃은 뒤 극심한 디봇에 걸린 형을 둔 ‘두호’는 환우 가족 모임이나 ‘디봇에 걸린 아이들의 가족 연대’ 활동을 하며 봇 수리 기사가 될 결심을 한다. 디봇 환자들을 상담하는 ‘서라’는 대화 봇 태우에게서 다른 누구로부터 얻지 못한 완벽한 위안을 느낀다. 간호 봇 ‘이삭’은 망가져가는 몸으로 치매 노인 양구의 돌봄 노동을 감당한다. 쌍둥이 봇을 개발한 ‘민지’는 어느 날 자신의 쌍둥이 봇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 처리됐음을 알게 된다. 폐기된 봇은 인공 쓰레기 위성에 버려지고, 고장 난 봇을 수리하는 것이 불법인 근미래. 태기, 창수, 준영, 아리, 두호, 서라, 이삭, 민지는 가깝거나 먼 사람들을 향해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 속에 ‘잔소리’를 숨겨놓았다고 밝힌다. 누구도 반기지 않지만 “가장 뜨거운 심장을 가진 구성원의 입술을 통해” 세상에 이어져온 잔소리를, 잘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한 방법으로 숨겨놓고 싶었다고 말한다. 언뜻 경쾌하게 읽히지만 돌아서면 가슴 서늘한, 가장 뜨거운 심장을 가진 소설가가 전하는 미래에서 온 편지. 다시, 이 이야기의 ‘비밀’을 읽어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50권의 책으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위픽’을 통해 공개된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한다. 3월 8일 첫 5종을 시작으로, 이후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하며 1년 동안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또한 책 속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소설 한 편 전체를 한 장의 포스터에 담은 부록 ‘한 장의 소설’이다. 한 장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