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듯 충무공 이순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일본군과 싸우면서 군중에서 쓴 일기이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76호로 지정 당시 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다. 그러다 2010년 8월 25일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기 7책과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까지 총 9권이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3년 6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회의에서 받아들여, 새마을운동 기록물과 함께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었다.
거북선과 학익진으로 전투를 이기고,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준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수군을 지휘해 한산도, 명량, 노량 등지에서 왜병을 격퇴하고 전란의 전세를 조선의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사후 조선 조정으로부터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받았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발발하는 조선 선조 25년(1592년) 음력 1월 1일(양력 2월 13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선조 31년(1598년)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16일)까지의 2,539일간의 군중에서의 생활과 전란의 정세에 대한 내용을 적은 일기이다.
《난중일기》라는 제목은 조선 정조 19년(1795년) 왕명으로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서 처음 붙여졌다. 원래 제목은 연도별로 《임진일기(壬辰日記)》, 《계사일기(癸巳日記)》 등으로 일기가 다루는 해의 간지를 붙여 표기하였다. 현존하는 《난중일기》의 판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친필 원본은 초서로 되어 있으며, 《이충무공전서》 편찬과 함께 원본 일기의 초서를 정자(正字)로 탈서(脫草)한 전서본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전서본은 친필 원본을 탈서편집한 것이나, 원본 일기에 빠진 부분(을미년 일기의 경우 전서본에만 존재)을 담고 있어 상호 보완 관계에 있으며,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전서본과 친필본을 합본하여 《난중일기초》를 간행하였다.
“이순신이 없었다면 전쟁에 패했을 것이고 류성룡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7년간의 전쟁 동안 출정한 날, 이순신 본인이 항명죄로 한양으로 압송되어 있던 시기에는 일기를 쓰지 못한 경우가 있었으나, 날짜마다 간지 및 날씨를 빠뜨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적었다. 내용은 시취(時趣)에 넘치는 일상생활, 동료·친척과의 왕래 교섭, 사가(私家)의 일, 수군(水軍)의 통제에 관한 비책(秘策), 충성과 강개의 기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식구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 상관과 장수 및 부하들 간의 갈등문제를 비롯해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임진왜란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료(史料)이다.
“이순신이 없었다면 전쟁에 패했을 것이고 류성룡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 서해 류성룡이 쓴 《징비록》을 통해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순신과 류성룡이 피로 쓴 임진왜란의 참상을 기록한 이 책들을 인생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