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나침반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지구의 반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지만, 나머지 반에서는 천문학적 숫자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이 더 늘어난 오늘날 지구촌의 비극적 현실.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빙하가 녹아 사라지면서 지구 종말 시계가 인류 멸망 6분 전을 알리는 이 긴박한 상황. 그러나 현존하는 위대한 정신 지도자 사티시 쿠마르는 따듯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고대 인도의 지혜를 돌아보면서 인간과 우주에 세 가지 속성이 있으며 물질과 자본 위주의 사고를 부추긴 속성이 팽배한 현재 상황에서도 각자가 자신의 ‘우아하고 소박한 속성’에 주목하고 ‘자연스럽고 진실한 길’을 걸어간다면 피폐해진 인간도 환경도 회복되고, 행복한 세상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역설한다. 치명적인 양극화,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 극한을 달리는 자본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 실업과 고용불안, 빈부격차와 FTA 등 쉽사리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정신적이고 실천적인 나침반의 역할을 할 것이다.
삶의 세 갈래 길
저자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서 말하는 인간과 우주의 세 가지 속성에 주목한다.
첫째, ‘사트바’는 ‘우아하고 소박하다.’라는 뜻으로 인간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자연스럽고 진실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순리에 따라 살아가며 자신과 주위를 돌보고, 더 많이 사랑하고, 경쟁보다는 상생을, 투쟁보다는 화합을 지향하는 사람을 말한다.
둘째, ‘라자스’는 ‘지나치고 화려하다.’라는 뜻을 지녔으며 일반적으로 ‘매력적인 것에 숨어 있는 위험’을 지칭한다. 저자는 이런 삶의 방식이 겉으로는 좋아 보일지 모르나, 결국 실망과 불안을 안겨줄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유형으로 말하자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되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고액 연봉과 예외적인 대우를 받으며 화려하게 살아가지만, 끝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때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기도 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셋째 ‘타마스’는 ‘어둡고 억압적인 상황’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앞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경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저자는 타마스적인 행동이 대담하고 짜릿하지만, 파괴적이고 혼란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인간의 유형으로 말하자면 세상을 지배하려는 자, 파괴하고 새로 건설하고 또 파괴하고 건설하기를 거듭하면서, 지역의 삶과 경제와 환경을 통합하여 거대하고 유일한 제국을 건설하려는 자, 그리고 그 제국을 유지하고 더욱 크게 키우려는 꿈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자가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속성들이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 심층에 공존하고 있으며 어떤 속성을 계발하고, 어떤 속성을 경계하느냐에 우리 미래가 달렸다고 말한다. 아울러, 우리가 먹고, 입고, 자고, 소비하는 모든 것, 이웃과 환경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떤 속성을 발현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치명적인 양극화를 막고, 파멸로 치닫는 지구를 온전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고 역설하면서 그 실천적 방법들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이것은 왜 희망의 메시지인가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는 일. 과학자, 환경운동가, 기후학자들은 한결같이 지구의 파멸이 다가왔고, 인간의 문명은 곧 종말을 고하리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군의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은 국가 간 사회계층 간 빈부의 불균형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경쟁에서 탈락하는 주체들의 실질적 소멸을 예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전 지구적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낙관적 견해를 표출한다. 그가 말하는 낙관주의는 ‘단순히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너무 늦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포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깨어나서 집단적 지혜, 창조성과 독창성, 상상력을 모아 정치·경제·사회적 시스템을 다른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파괴적이고 소비적인 문화는 단지 250년 전에 시작되었을 뿐, 지구의 역사에서 이것은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극복할 수 있다.”
그는 이제 우리가 ‘귀환점’에 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행복과 진정한 번영과 즐거운 삶을 실현하려면 인간관계에서, 사물을 대하는 자세에서, 소비 행태에서 ‘우아한 소박함’을 찾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