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100분 고전 016] 남산에 구름 끼더니 북산에 비 내린다 2 - 굉지 선사의 송고 100칙

[100분 고전 016] 남산에 구름 끼더니 북산에 비 내린다 2 - 굉지 선사의 송고 100칙

저자
정각
출판사
이펍코리아
출판일
2011-11-07
등록일
2012-11-1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984KB
공급사
웅진OPMS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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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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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굉지(宏智) 선사 광록(廣錄)≫ 9권 가운데 제2권에 수록되어 있는 ≪송고(頌古) 100칙(則)≫을 번역한 것으로, 사주(泗州)의 보조선사(普照禪寺)에 주석했던 굉지 정각(正覺)의 송고 100칙을 시자 법윤(法潤) 및 신오(信悟)가 굉지 입적 40년 후인 1197년에 편찬한 것이다.
송고(頌古)는 고인의 일화에 해당하는 고칙(古則) 내지 본칙(本則)에 대하여 송고의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운문의 형태인 게송을 붙인 것을 말한다. 굉지의 ≪송고 100칙≫은 다시 원나라 초기에 만송(萬松) 행수(行秀)가 그 전체적인 대의에 해당하는 수시(垂示), 짤막한 주석에 해당하는 착어(著語), 고칙 내지 본칙의 일화에 얽힌 자세한 배경 설명에 해당하는 평창(評唱) 등을 붙여 ≪만송노인 평창(評唱) 천동각화상(天童覺和尙) 종용암록(從容庵錄)≫ 6권으로 만들었다.
- 문자와 언설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술은 먹지 못하고 술지게미만 먹는 꼴과 같다. 부처님을 흉내 내고 달마를 모방하는 것으로는 끝내 자신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언설을 통해서 그리고 밖을 향해서 찾으려 한다면 대당국처럼 드넓은 세상에 한 사람의 선자도 발견할 수가 없다. 오직 자성의 법문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깨침을 지향하는 향상의 도리와 교화를 펴는 향하의 보살도가 근본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도리를 내세우는 동산의 가풍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곧 수행과 깨침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은 깨침의 행위이고 깨침은 수행의 양상이다. 수행은 깨침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깨침은 수행의 작용이 완전하게 드러난 양태이다.
- 눈 밝은 사람이라면 조주가 말한 ‘내려놓거라’와 ‘그러면 들고 있게나’에 속지 말아야 한다. 내려놓는 것과 들고 있는 것이 다르지 않다. 단견에 빠져 있는 자에게는 영원의 속성을 가지고 그 어리석음을 벗겨주고, 상견에 빠져 있는 자에게는 무상의 속성을 가지고 그 눈꺼풀을 벗겨준다.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는다는 엄양의 견해는 벌써 공무(空無) 내지 단견이다. 그 단견이라는 생각을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느냐 하는 견해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집착으로 상견이다. 이 또한 손톱 밑에 박혀 있는 가시처럼 말끔하게 뽑아버려야 한다.
- 애당초 본래불이지 않으면 수행이니 깨침이니 하는 것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축생인 개가 수행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개는 여래성의 깊은 믿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중생은 다르다. 적어도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야말로 깊은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 축생을 건지려면 자신이 직접 축생이 되고, 인간을 건지려면 직접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삼세제불이 축생과 더불어 아무런 차별도 없는 이유이다. 보살이 터럭과 뿔을 뒤집어쓴 축생으로 환생해 펼치는 보살행을 인간의 부류와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이류중행이라 한다.
- 수행하는 납자는 깨침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깨침을 얻은 이후에는 수행을 잊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수행은 깨침이 되고 깨침은 수행이 된다. 수행과 깨침은 동등한 입장이다. 수행과 깨침이 서로 열린 관계에 있다. 만약 깨침을 겨냥한 수행이라면 이미 수행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결코 깨침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수행을 바탕으로 한 깨침은 수행을 벗어나지 못한 깨침으로서 불완전하다.
- 실로 선 수행에서는 일체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선입관념의 모두를 버리고 불(佛)과 법이라는 것마저도 모두 버려 무소유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서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생각마저도 다시 버려야 한다. 하물며 열등한 신념은 물론 부처이든 신이든 진리이든 사상이든 깨끗하게 그것을 버려 마음의 대청소를 함으로써 갓난아이의 마음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 호떡을 사려고 하는데 정작 먹어보니 만두였다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속의 상황이다. 소리와 색을 통해서 도를 깨치고 마음을 밝힌다고 하지만, 소리 가운데 정해진 도가 없고 색 가운데 정해진 마음이 없다. 마찬가지로 호떡을 사지만 그것이 언제나 호떡일 수는 없다. 그것을 먹어보면 만두일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소리 속에서 소리를 해탈하고 색 속에서 색을 해탈하는 근진삼매이다.
- 일행삼매는 자유롭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주인이다. 그러나 주인이라는 분별상이 없다. 주객을 잊었지만 자신이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구지의 일지두선이야말로 구지 자신의 손가락이면서 그것을 수용하는 각자의 몫으로서 남는다. 모든 시방세계가 하나의 손가락이요, 모든 천하대지가 그 손톱 밑에 끼어 있는 하찮은 때일 뿐이다.
- 일체중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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