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색감, 어린 시절 읽던 동화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그림으로 잘 알려진 미술계의 거장 마르크 샤갈(1887-1985)!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에 맞춰 출간된 샤갈에 관한 여러 책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책이 있다. 바로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이다. 샤갈과 성서라니! 그것도 인류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보편적인 내용을 담은 창세기편을 샤갈이 그림으로 말했다니까 말이다.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는 프랑스 니스에 있는 ‘국립마르크샤갈성서미술관 The Mus?e du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에 소장되어 있는 샤갈의 성서 그림에 대한 해설이다. 샤갈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65세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적인 삶의 원천이 되었던 성서, 특히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2-3m나 되는 커다란 화폭에 담았다. 지난 2천년 동안 서구 사회와 그들의 삶을 지탱하였던 성서의 주요 인물들을 그림에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샤갈의 성서 그림에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삶의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래서 시선 또한 남다르다.
샤갈의 성서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유대인성’을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경전을 독특한 방식으로 읽는다. 경전을 읽는 방식에는 ‘기록된 경전을 읽는 방식’과 ‘해석된, 그러니까 경전의 행간을 읽어 말로 전한 구전 경전’이 있다. 샤갈은 성서 그림을 그렸던 렘브란트나 라파엘 등 유럽의 화가들이 보지 못한 ‘해석된 경전’을 과감히 화폭에 담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의 경전 읽기 방식을 익혀 왔기 때문이다. 또한 샤갈은 20세기 초 유럽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인류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경험하면서 유대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인간 예수의 십자가를 인류 보편의 고통의 상징이자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샤갈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위대한 예술을 보여주게 된다.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는 샤갈의 성서 그림에 대한 해설과 그와 관련된 히브리어 본문의 구체적인 용어 설명으로 1부를 구성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고백한 천상의 세계인 에덴동산, 그 안에 살고 있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감동적인 인생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샤갈 그림을 보는, 혹은 샤갈의 정신과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일곱 가지 시선을 제안하고 있다.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다’, ‘만물은 신의 사랑이다’, ‘고통을 통해 인생을 완성하다’ 등 성서의 가르침을 샤갈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였는지 그 시선이 사뭇 궁금해진다. 이 책을 쓴 배철현은 서울대 종교학과 유대-그리스도교 전통교수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