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봐
아프리카?????
너도 흙집에서 살았어?
문 열고 나가면 사자가 돌아다녀?
옷도 입지 않은 원주민들만 가득한 그 아프리카?
아니! 아니야!
양배추랑 파파야로 김치도 만들어 먹었는걸!
지갑을 잃어버렸던 시골여행에선 먹여주고 재워준 고마운 사람도 있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글로 배우던 학생들과 컴퓨터실을 만들면서 진짜 실습도 했지!
갑자기 웬 탄자니아?
서른다섯,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듣기 좋은 직업을 가진 저자의 실상은 프로젝트 오픈일정에 맞추어 밤샘작업에 시달리고,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는 작업량을 해내야 했던 개발자. 접대를 위해 먹기 싫은 술을 마시고,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휴가만을 꿈꾸며 살아가던 어느 날, 40대의 부장님과 누구의 일이냐를 두고 얼굴 붉히며 싸우던 어느 날, 사표를 던짐과 동시에 코이카에 봉사활동 지원서를 낸다!
어느날 읽은 책 속의 한 구절, “우리는 여기까지 너무 빨리 걸어왔소. 그래서 마음이 아직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소. 마음이 우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
탄자니아라는 나라를 잘 알지는 못했다. 갈 수 있는 나라 중에 먼 곳을 보았다. 웬만한 용기로는 쉽게 갈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선택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가슴이 먹먹할 때 즈음, 비행기는 에티오피아를 지나 바다를 건넜다. 구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탄자니아, 초록색의 나무들과 간간이 보이는 집.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그곳에서의 2년, 가슴 벅찬 삶이 시작되었다. - 머리말 中
일상탈출 여행?
누구나 한번쯤은 일상탈출을 꿈꾼다. 일에 대한 회의, 사람에 대한 회의, 심지어 삶에 대한 회의까지 한번쯤은 느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이 참 원망스럽지만, 누구도 그 회의를 피해갈 순 없다.
주위엔 모두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 투성이다. 빠르게 달린다는 것은 어딘가에 목표가 있다는 의미인데, 결과라는 게 항상 예상대로 적중하는 것만은 아니니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두려운 ‘회의‘의 시점이 온다. 내가 정한 목표가 과연 가능하긴 한 것이었을까, 사회구조가 이미 그것을 불가능하도록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정말 가치있는 작업이긴 할까? 고민이 거듭되고 그 고민이 내 삶의 가치를 운운하는 시점까지 오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걸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일상을 탈출한다. 사표를 던지고 홀연히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은 용기, 부러움, 동경 등 수많이 현란한 단어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아, 그 용기를 향해 보내는 박수소리마저 힘이 빠진 느낌이다.
집을 버리고 일상을 탈출한 ‘여행’이 아닌, 집을 짊어지고 일상을 옮겨간 ‘삶‘ 이야기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일상을 벗어난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을 옮겨간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만, 아무리 그 나라의 말을 잘해도, 그 나라의 지리를 훤히 꿰뚫더라도 여행지에서 우리는 관찰하는 ‘객‘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곳의 다른 계절은 어떤지, 그곳에서 집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선가게 아저씨가 다음 달엔 무슨 생선을 들고 나오는지, 햇빛을 가릴 커튼을 만들려면 어느 어느 가게를 들러야 하는지는 절대 알 수 없는 ’여행객‘일 뿐이다. 그래서 여행과 삶은 다르다. 책, 영화,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고 탄성을 지르고, 감탄하고, 놀라는 여행은 삶에서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엑기스만 뽑아서 모아둔 ’부록’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상이라는 현실, 즉 ‘본문’과는 쉽게 섞일 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저자의 인생이라는 ‘본문’에서 느닷없이 등장한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가지의 일을 하고나면 일을 제외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주말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 다 하는 비슷비슷한 취미생활을 하거나 심지어는 잠만 자는 사태도 벌어진다. 일과 삶이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워커홀릭에게 여유는 너무 낯설어 다가갈 수 없는 시간이 되고 만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일상을, 마음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새로운 삶을 꾸리면서 마음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여행자가 아닌 일상 생활자가 되어. 서울에 두고 온 마음이 낯선 아프리카까지 자기를 찾아와줄 때까지. 낯설기만 했던 여유를 알뜰하게 즐기는 법을 배웠고, 맑은 눈동자에서 순수함을 되새겼고, 주어진 일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 내 삶의 진짜 주인공인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 찾으러, 아니 기다리러 떠난 시간. 2년의 아프리카는 앞으로 남은 그녀 인생의 나머지 ‘본문’ 역시 달라지게 할 것이 틀림없다.
코이카의 발견, 대단한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해외봉사활동,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라며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발판을 마련해 주는 곳이 바로 국제협력단 코이카다.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코이카를 통해 해외봉사를 떠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코이카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으며, 코이카를 통한 해외봉사 체험을 소개한 책은 거의 없는 상태. 이 책은 해외봉사활동 내지는 해외취업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코이카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더불어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느꼈던, 그리고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소박한 이야기도 실려있다.
돌아옴, 그리고 남은 꿈
돌아온 나에게 가슴속에 묵직한 뭔가가 생겨났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물러서지 말라고 학생들이 말해주는 듯하다. 가슴속에 탄자니아는 멀지 않다. 눈을 감으면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씩 떠오르고,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미소가 번진다. 돌아온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혼자 웃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닌가.
- 324쪽, 책의 마지막 문장
짧은 여행으로도 그곳을 떠나오려면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하물며 2년간의 삶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마음은 어떨까. 하지만 저자가 선택한 조금 특별했던 그 시간의 끝은 우리가 상상하는 단지 먹먹한 마음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단순한 그리움이나 추억보다는 책이 없어 공부가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마음껏 꿈을 꾸며 자라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저자의 마음에 자리 잡은 간절한 그 꿈은 이루어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