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가락국의 후예들

가락국의 후예들

저자
김병기
출판사
역사의아침
출판일
2012-06-14
등록일
2013-03-15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3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한국 최대 종가 가락성씨의 재발견,

김해김씨, 양천ㆍ태인ㆍ하양ㆍ김해 허씨, 인천이씨의 뿌리는 하나다!




매년 두 차례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 가락국의 옛 도읍지 김해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김수로왕의 후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시조제를 지낸다. 멀리 해외에서 참석하는 열성 후손들도 있다. 시조 김수로왕과 왕비 허왕후의 종묘宗廟 숭선전崇善殿에서 행해지는 춘추향 대제春秋享大祭에는 지금도 수만 명의 후손들이 모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어느 가문엔들 시조제가 없겠느냐마는 김수로왕의 제향祭享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우선 세칭 600만에 달하는 김해김씨의 씨족 세력이 그렇고, 양천허씨, 태인허씨, 하양허씨, 김해허씨 등 이른바 가락허씨들과 인천이씨 후손들도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른바 한 지붕 세 가족인 이들의 내력을 알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최근 역사의아침에서 펴낸 『가락국의 후예들 : 한국 최대 종가 가락성씨의 재발견』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비롯한 그 후손들의 족적을 통해 2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가락성씨의 저력과 실체를 살펴보고, 가문과 뿌리에 대한 긍지와 자긍심이 후손들에게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반추해본 책이다. 이 책에서는 가락국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과정은 물론 나라를 빼앗긴 가락국의 유민들이 신라를 장악해가는 모습 등을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파헤쳤으며, 천문학자 김조와 경세가 김자정 부자?무오사화의 중심에 선 김일손?조선조 정통 무맥을 세운 김완?형제 청백리 허종과 허침?고문으로 이름을 떨친 허목?구한말 의병장 허위 형제?당나라 황제에게 성을 받은 허기?가문을 번영시킨 이자연 등 고려시대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가락국의 후예들이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그 외에도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후손들이 어떻게 김해김씨, 양천?태인?하양?김해 허씨, 인천이씨로 분파되었으며, 나라를 잃은 후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현재 한국 최대 종가를 이루어냈는지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재조명했다. 또한 이 책은 가문의 영광과 성공한 인물에만 집착하고, 문중 인물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되지 않는 풍토가 지배적인 문중사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장을 제공해줄 것이다.





김수로왕을 시조로 모시는 600만 가락성씨,

2천 년 역사를 이어져 내려온 그들의 저력을 파헤친다!




가락국은 기원후 42년 김수로왕의 탄강을 시작으로 5백 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가면서 동방의 강국으로 발전했다. 때로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가락의 우수한 철기문화를 주위에 전파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와 더불어 세력을 떨쳐나갔지만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강력한 제국들도 결국에는 모두 멸망하고 만다. 세계 제국 로마도 멸망했고, 천 년 왕국 신라는 왕건에게 나라를 바쳤다. 진시황의 진 제국도 유방에게 망했으며 한나라 역시 조위에게 멸망당했다. 가락국 또한 힘을 잃어 신라에게 나라를 바쳐야 했다. 가락국의 후예들은 나라를 잃은 후 뿔뿔이 흩어졌다. 바다를 건너 왜국으로 건너가거나 신라의 사민정책에 의해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기도 했으며, 옛 땅에 남겨진 수많은 백성들은 더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가락정신’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그들은 수로왕을 모시고 제향을 드리고 있으니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 왕조가 5백 년의 역사를 이어갔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거니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시조와 조상의 유업을 추모하고 해마다 봄가을로 그 후손 수만 명이 시조 능묘 앞에 제향을 드린다는 것 또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각각 성씨가 다른 김씨, 허씨, 이씨가 함께 모여 중앙종친회를 이루고 함께 조상을 섬기는 모습은 다른 가문에서는 보기 힘든 가락성씨들만의 개방성과 화합의 미풍 전통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본관과 종파를 가진 성씨들이 있고 각각 수많은 계파별 종친회로 모이고 있다. 그 가운데 가락국의 후손들은 분열된 종파를 만들지 않고 서로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한울타리 안에 유기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 가락성씨들이 오늘날까지 이처럼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의 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가문의 오랜 전통과 가락의 혼이 후손들 가운데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하나로 화합하는 ‘가락정신’이야말로 21세기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한국상이다.





인물로 밝혀낸 미완의 왕국 가야와 그 후예들 이야기



가락국의 후손들은 나라를 잃은 후에도 신라에 건너가 큰 공을 세우면서 가락인의 위상을 크게 떨쳤다. 구형왕의 아들 김무력, 손자 김서현 그리고 증손자 김유신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또한 가락국의 후손들은 고려왕조에 이르러 가문을 부활시키며 고려의 귀족문벌로 수많은 문무 장상들을 배출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좀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의 역성易姓에 많은 가락의 후예들이 두문동으로 들어가 고려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켰던 것이다. 무오사화를 당해 김일손이 연산군에게 비참하게 처형되면서 가락의 후예들, 특히 김해김씨 일문은 초야에 묻혀 은인자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가락허씨들 중 양천허씨는 수많은 상공 재상들을 배출하면서 조선조의 예학과 경세가로 이름을 크게 떨쳤다. 허목이 그랬고 허적이 그러했다.

조선 후기에는 안동김씨를 비롯한 이른바 문벌 있는 몇몇 집안의 독주체제가 깊어지면서 이들이 조선의 모든 벼슬을 독식했다. 관권의 횡포와 수탈로 백성이 설 자리를 잃었으며, 사회질서가 문란해지고 농민반란이 꼬리를 물었다. 나라는 이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결국 노론가의 전횡에 빠진 조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른바 조선 명문가의 후예들은 앞 다투어 일제의 작위와 은사금에 자신과 가문을 팔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나라가 위란에 빠질 때 나라를 위해 자신과 가문을 던지는 것이 예로부터 가문의 명예요, 긍지였다.

가락국의 후예들도 나라가 위난을 맞았을 때 가문의 지조와 자긍심을 지키며 의병으로, 의열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바쳤다. 허위 집안이 그렇고, 김상옥이 그러했다. 그들이 이처럼 자신의 몸과 가족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구국운동에 나선 것은 한때의 의분이 아니라 선조 대대로부터의 교훈과 가문에 대한 긍지 때문이었다.

QUICKSERVIC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