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해 지은 집
시 쓰는 건축가, 21세기 이상, 한국의 알랭 드 보통
함성호의 시와 자연이 사는 집 이야기!
함성호의 산문집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지은 이야기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어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함성호는 독자들에게 집을 한 채 지어주고 있다. 그 집은 높고, 크고 넓은 집이 아니라 낮고 작고 적은 그러나 아름다운 시가 사는 집이다. 별과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함께 사는 집, 꽃과 새와 나무가 찾아오는 집, 몸만이 아닌, 마음이 사는 집, 여유 있는 생각과 꿈을 꾸게 해주는 집이다. 그 집이 바로 부잣집이고 잘 만들어진 집이며, 잘 사는 집이자 함성호가 지어주고 있는 집이다.
함성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 건축, 문학 등의 글을 통해 독특한 지적 유희를 펼쳐가는 스위스 출생의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과도 같이 함성호는 이 책에서 집 이야기만이 아닌 여행, 문학, 철학 그리고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깊고도 방대한 미학과 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 지식 산책은 우리 문화에 대한 답사기이자 새로운 제안이다.
시인이자 아내에게 지어 준 집 素昭齋
어느 날 함성호에게 이상한 의뢰가 들어온다. 땅도 없고 시공비는 물론 설계비도 없는 사람이 집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건축주에게 계획도 없고 돈도 없고 땅도 없어 곤란하다 말하니, 계획은 알아서 하고, 돈은 없으면 대출을 받아서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대출? 내가 왜? 내가 왜 이 사람의 집을 짓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지? 어떤 수를 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사람은 나에게 이런 무리한, 무례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나는 이 이상한 의뢰인의 무례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의뢰인은 내 아내였다.
- 「이상한 의뢰인」 중에서
그의 아내는 시인이자 사설 어린이도서관의 운영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빌려가는 것은 공짜고 개설하는 작은 강좌를 통해서 얻는 수입이 전부라서 전체 비용이 수익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만성 적자였고, 둘은 그저 가난한 부부였다.
아내를 위해 집을 지었다. 옥탑에서 정발산으로 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집이었다. 많은 빛이 들어오게 지은 만큼 많은 빚을 졌고, 집은 춥고, 비도 샜지만, 아내는 그 옥탑을 좋아했다. 집을 설계하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일은 집주인이 행복해 할 때이다. 집 때문이 아니라 그 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자연과 사람 사이가 물 흐르듯 할 때, 나는 행복해진다.
-「책머리에」 중에서
그는 집의 영혼은 바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에서 산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씻고 대화하고 꿈꾸며 휴식한다. 그만큼 집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집에 대한 인식을 투기와 과시 그리고 몸을 누이는 곳으로만 생각한다.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은 작아도 가난해도 저녁이면 일몰을 감상할 줄 아는 집, 가을이면 들꽃 한 줌 들여놓을 줄 아는 여유 있는 집이다. 그것이 바로 부부 시인의 집 ‘맑은 웃음소리가 있는 집(素昭齋)’이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자신의 성리학적 이상을 집에 구현하고자 애썼다. 담양의 소쇄원은 그 집 주인인 양사헌의 자연관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하다못해 허름한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라도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이나 가구의 선택으로 나는 그 집 주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 중에서
사람이 살아야 할 진정한 집, 마음을 지향하는 집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은 집이 있다. 그 생명의 집들은 자연과 더불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바람, 물, 더위, 추위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람의 집은 당장만의 편리함을 추구하며 ‘어떻게 하면 겨울을 따스하게 지내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완벽하게 외부를 차단하는 법에 골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집은 숨을 쉬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편리에 젖은 현대인들이 일부러 창을 열어 추위를 맞아들이는 환기를 택할 리가 없었고, 창은 더욱더 굳게 닫히고 뛰어난 밀폐 방식의 새로운 창들이 속속 개발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만성적인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고, 실내의 공기와 외기의 온도 차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몸은 겨울 내내 감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겨울의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편리를 얻었지만 대신에 병도 함께 얻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는 상처뿐」 중에서
언제고 허물면 자연이 되던 집은 어느새 지구 환경을 해치는 주범은 물론, 새집증후군과 같은 형태로 사람을 공격한다는 말까지 듣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다시 진정 나를 위한 집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아닌 마음을 위한 집을 지어야 한다.
여름엔 좀 덥게, 겨울엔 좀 춥게. 그렇게.
저자는 미래의 건축은 과학 기술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온다고 말한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우리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이 당연한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의 건축은 열리게 된다고 말이다.
21세기의 과학기술은 마음을 지향하게 될 것입니다. 집의 진화도 거기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외기와 실내를 강하게 구분해온 벽의 역할이 느슨해질 것이며, 그 결과 추위가 실내로 들어오게 될 것이고,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벽을 통해 외부로 나갈 것입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바로 거기에 진정한 미래의 건축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는 상처뿐」 중에서
인문, 역사, 신화, 공간을 통해 바라보는 집 이야기!
시인이자 건축가이지만 저자가 가지고 있는 인문, 신화, 공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까닭 모를 허기에 시달리는 괴물에게 파괴와 창조의 막강한 권능을 가진 시바 신이 말했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너 자신부터 먹어라” 그러자 이 괴물은 정말 자신의 발부터 시작해서 몸통, 팔까지 다 먹어치운다. 그러고는 얼굴 하나만 달랑 남는다. 시바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렇게 얘기한다.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토록 극명하게 보여준 예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내 너를 키르티무카라고 부르리라.”
-「욕망의 얼굴」 중에서
배가 불러도 허기에 시달리며 모든 것들을 독식하려는 현대인들을 빗댄 위의 글에 나오는 ‘키르티무카’는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이며 최근 나온 함성호 시인이 자신이 그린 ‘키르티무카’ 그림과 함께 출간한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인도 무굴제국의 왕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에게 바치는 인류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연시인 타지마할에 얽힌 이야기, 어느 화가에게서 심한 정신지체와 신체장애를 앓고 있는 열한 살짜리 딸을 위한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장애에 맞는 치료의 집을 설계하려다가 결국에는 장애자가 아닌 고귀한 인간 존재로서의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감동 있게 다가온다.
한강 하구에 또다른 국가를 만드는 율도국 프로젝트
건축, 역사, 지리, 문학 등 풍부한 저자의 지적 에너지는 은둔하는 지식인에만 머물지 않고 이 땅에 끊임없는 기획과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발전하고 싶어 한다. 이 책에는 정전협정에 의해 남쪽과 북쪽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땅, 한강 하구에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소개된다.
밀물 때도 잠기지 않는 사구, 교동과 예성강 하구에 있는 정사초와 김포, 개풍군 조강리 사이에 발달된 사구, 그리고 오두산 통일 전망대와 관산반도 사이에 펼쳐진 사구가 바로 그곳이란다. 또 하나의 섬인 이곳에 건축가 조건영, 반전평화 사진작가 이시우, 그리고 문학평론가 김 레베카가 탈 군사주의, 다문화주의, 직접민주제 참여정치라는 세 요소를 끌어와 유라시아의 현악기를 모은 연주회와 이시우의 사진 작업, 조건영의 건축 작업을 동시에 펼치자는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우리의 분단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세계란 무엇인지를, 한강 하구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함성호는 말한다.
“집을 위한 집은 있을 수 없다. 집에는 항상 당신이 있어야 하고, 집은 항상 당신을 위해 지어진다. 좋은 집은 꼭 당신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