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지금, 이 시대 청소년문학에 꼭 필요한 문제적 소설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2010년 제정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제1회 대상 수상작인 『불량 가족 레시피』는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부유하는 청소년의 정체성과 가족해체, 계급·계층 간의 불균형 등을 화두로 삼은 문제적 소설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자신이 동일화시켜야 할 ‘상징적 아버지’가 실업자로, 조기퇴직으로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안정적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아야 하는 문제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적일 수 있는데 문제적이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청소년문학이다’는 심사위원 김진경의 말처럼 지금 이 시기는 문제적 청소년소설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심사위원 김진경, 안도현, 김미월, 유영진, 신형철은 『불량 가족 레시피』를 청소년과 학교교육을 바라보는 낡은 매트릭스를 가볍게 넘어서는, 청소년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문제적 소설이라며 주저 없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불량 가족 레시피』는 원조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 있는 위태로운 한 가족의 사연을 옹골찬 입담으로 신랄하게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이야기의 보조 축으로 나오는 ‘코스튬플레이’는 청소년들의 유동하는 정체성을 암시하는데, 갖가지 캐릭터 분장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절실한 욕망이 담겨 있다. 이는 계층적 경계 속에 놓인 오늘날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불량 가족 레시피』의 등장은 앞으로 우리 청소년문학의 깊이와 성장을 더하는 데에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보다 더 불량스러울 수는 없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어느 불량 가족의 기구한 사연
여고생 여울이는 도덕 시간 수행평가로 자서전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족 이야기를 곁들여 쓰라는 도덕 선생의 말이 무색해질 만큼 여울이네 가족사는 활자화되는 순간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자서전 쓰기를 시도하며 여울이는 가족들 하나하나를 되돌아보는데……. 뭉치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가족들. 오직 살 길은 흩어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 위태로운 가족의 사연은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다.
팔순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따발총 같은 잔소리는 절대 늙지 않은 할매. 노인이라고 얕봤다가는 큰코다칠 정도로 꼬장꼬장한 슈퍼 할매가 우리 집에 버티고 있다. (중략) 또 한 명의 문제적 인물로는, 이미 쉬어 버린 밥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쉰넷의 아빠. 그는 채권추심 하청 일을 사업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의 근심덩어리라고 불리는, 엄마가 다른 이복 남매들. 먼저, 나보다 네 살 위인 전문대에 다니는 오빠가 있다. 오빠는 다발경화증이라는 고질병 때문에 늘 기저귀를 찬다. 그다음, 나만 보면 신기하게도 거침없이 욕을 쏟아 내는 저주받은 입을 가진 언니가 있다. 그녀는 현재 고3 수험생이다. 마지막으로 평생 주식만 하다 결국 뇌가 고장 나 버린 뇌경색 삼촌이 있다._본문 중에서
이 가족 사이에서 ‘엄마’라는 말은 금기어로 굳혀 있다. 엄마가 다른 세 남매는 엄마 없는 익숙한 생활 속에서 자기 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여울이 역시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이라는 태생을 지울 수는 없지만, 상상 속 엄마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외로운 현실을 간신히 버텨낸다. 그런 상황에서 현실 도피의 한 방법으로 시작한 코스튬플레이는 여울이의 유일한 탈출구며 낙이다.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진화가 필요하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할퀴고 물어뜯고 상처만 주는 이 불량 가족에게 마침내 분열이 찾아든다. 아빠의 무임금 노동 착취와 무관심에 못 견뎌 언니, 오빠, 삼촌이 잇달아 가출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빠는 불법을 저질러 경찰에 구속이 되고 만다. 결국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된 여울이는 그토록 떨쳐버리고 싶었던 가족이라는 둘레를 그리워하는 묘한 감정에 빠진다.
심사위원 김미월의 말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차악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어디 하나 잘난 곳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비장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처절하지만 사랑스럽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불량하기 그지없지만,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 불량 가족을 만난 독자라면 우리 사회의 어제, 오늘, 더 나아가 내일을 보게 될 것이다. 너무 솔직하게 드러난 자신의 속마음을 맞닥뜨려 얼굴을 붉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면할 일만은 아니다. 이 불량 가족,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진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행인1’이 아닌 ‘주인공’으로 살아가다!
가족이라는 둘레에 새로운 정의를 만든 『불량 가족 레시피』
이 가족의 중심에 서 있는 여고생 여울이가 입시 경쟁과 학교교육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 유동하는 정체성을 코스튬플레이라는 놀이로 연결하며 판타지 세계에 빠져보지만, 결국 여울이는 그 판타지가 현실로 확장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진짜 ‘나’의 모습으로 나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판타지 세계보다 멋지다는 걸 깨닫는다.
안정적일 수 없는 가정과 청소년들의 일탈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 해체 직전에 놓인 이 가정에서 여울이는 자신의 삶, 그리고 가족들을 돌아보고 감싸 안으며 비로소 가족이라는 둘레에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간다.
이 소설을 만난 청소년들이라면 ‘나’와 나의 ‘가족’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량 가족 레시피』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문제적 소설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