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 소설의 주인공들도 나를 닮았다. 초기『완전한 만남』에 수록된 <뿌리 내리기>같은 작품들은 한결같이 분단체제의 질곡이 찍어낸 전형적인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분단논리가 강제한 사상적 편견과 인간적 비열함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감연히 투쟁한다. 그것은 당대의 진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용늪 가는 길>에선 현실의 두터운 벽과 대결하기 보다는 심리적 화해를 준비한다. 이런 방향의 변화는 후기분단체제의 시대적 분위기를 일정 정도 반영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96년 여름 두만강을 건넌 뒤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을 악마의 자식이라 생각한다. 소설에 접근할수록 더욱 혼란에 빠지고 미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모든 것이 태양처럼 명확했으나 지금 등산로를 잃어 버리고 어느 안개 내린 숲 속에서 혼자 헤매고 있는 나를 보면 눈물 겹다.



때론 송도 3절이 아니라 작가 3절(절필 절망 절연(모든 관계를 끊어 버림))이 내 앞을 막아 서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혼이 살아있는 증거라 생각하고 어깨가 무너지고 손가락 마디에 건초염이 생겨도 오늘 생존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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