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스케치북을 든 여행자 오기사가 길 위에서 기록하고 그린
비행기와 커피와 사랑에 관한 기억
바르셀로나의 행복한 오기사가 여행한 16개국 50여 개 도시 이야기
‘오기사’는 “여행하듯 살자”가 자신의 모토라고 밝힌다. 학생으로, 이방인으로 살았던 스페인에서의 생활 중에도 느리게 떠도는 그의 모습은 여전해서 유럽의 저가 항공을 톡톡히 활용하며 버릇처럼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다닌 16개국 50여 개 도시에서 마신 커피와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특별한 하루를 스케치북과 카메라에 담았고《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는 그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오기사의 여행은 호기심 가득한 특별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또 한 번 짐을 챙기고 또다시 떠나지만 흥분되지는 않았다”는 그는, 여행이 ‘삶처럼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에 뉴욕과 파리와 베네치아와 프라하 어디서나 낯설지 않은 도시의 냄새를 맡고 비행기가 연착되어도 담담하며 늘 그랬듯이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쓱쓱 스케치를 그려낸다.
이 책에 담긴 도시 풍경은 그래서 스쳐 지나가며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머물면서 스며드는 느낌을 준다.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느낌을 앞세워 오기사가 산책하듯 거닐다가 들른 카페, 골목길, 무명작가의 아틀리에와 허름한 여관방에 동행하는 사람에게 사실 그곳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바쁜 발걸음을 늦춘 채 오랜 기억을 줍고 적당한 우연을 기대하며 여행이 주는 행복한 피로감을 즐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여행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오기사가 그림으로 쓴 여행 스케치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의 담담하고 쿨한 말투와 짧고 간결한 문장,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편집한 사진, 그를 닮은 특유의 스케치와 카툰 등은 편안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외로움을, 비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일상적인 감성을, 슬며시 나오는 웃음과 센티멘털한 그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줄 것이다. 아주 익숙한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타임 스퀘어조차도 새로운 풍경으로 조합해내기도 하고 도시 곳곳에서 독특한 건축물 앞에서의 탄성을 내뱉거나 무질서함에서 새로운 질서를 읽어내는 시선에서 건축가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먼저 출간한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인터넷 블로그 콘텐츠의 활용, 폭넓고 다각적인 소통 그리고 여행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조합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오기사’ 오영욱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축가로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한동안 다시 떠날 일은 없을 거’라니 당분간 그의 여행 이야기는 드물어지겠지만 서울에서 새롭게 펼칠 프로젝트도 궁금증을 더한다.
·1976 서울 출생
·1995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입학
·1999 제10회 태양열 건축 학생 공모전 입선
·1999 대한민국 제19회 건축대전 특선
·2000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졸업작품전 최우수상)
·2000 대림산업 건축기술본부 입사
·2004 네이버 블로그 2006년 싸이월드 스킨샘 입점
·2005 이미지와 텍스트 전 / 갤러리 진선
·2006 현재 스페인 체류 블로그 : 행복한 오기사 blog.naver.com/nifilwag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건설 역군으로 일하면서 해외 도피 자금을 모았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불쑥 떠남을 결정했다. 초등학교 때는 짝사랑만 하던 내성적인 아이였다. 중학교 때는 드래곤볼을 베껴 그리며 심도 있는 그림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때 신문반 기자로 학교에 반항하다가 적당히 얻어맞고 퇴학당할 뻔했고, 영어나 한자 등이 싫어서 이과를 선택했고, 이름이 제일 멋있어서 들어간 건축과에서 오만하게 굴다가 좌절을 몇 번 맛보았으며 대학 때 전공인 건축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강의를 제치고 학기 중에 유람을 일삼았다. 공일오비적인 감성이 흐릿하게 남아 있고, 서태지를 보면 마음이 아련해지는 조금 소심한 76년생.스물세 살 무렵에서야 비로소 잠재되어 있지만 여태 빛을 보지 못한 천재성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직까지 방랑을 일삼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 적도 있었고, 모범생을 가장한 채 다소 삐딱한 학창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끝내는 부지런함이 삶의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스페인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