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하고 싶던 날 : 하루 한 편 짧은 소설 26
‘부디 오늘은 신경질을 부리지 말리라. 부디 표독스럽게 굴지 말리라.’
아침 일찍 종업을 하러 나오면서 이렇게 어질고 싶은 명심을 한 것도 오정이 못되어 그만 다 허사가 되고 말았다.
아침의 러시아워가 지났는데도 손님은 너끔하지를 않고 도리어 더 붐비기에 웬일인고 했더니 오늘이 음력 사월 파일이라고.
동대문에서 나가는 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도록 심하지 않은데 들어올 때에는 광나루에서 벌써 만원이다.
구의(九誼), 모진(毛陳), 화양(華陽), 도교(稻橋) 이렇게 정거장마다 장 속같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 화양은 평소에도 승객이 많은 곳이라지만 도교는 가정거장으로 열 번에 일곱 번씩은 오르내리는 사람이 없어 정거도 않는 곳인데 오늘따라 변변히 여남은씩이나 있곤 한다.
상후원(上後原)에서부터는 뚝섬선(뚝島線)이 합치는 곳이라 수송력이 갑절로 느는 셈이나 종시 많이씩 들끓고 있다.
성동(城東), 을지나 왕십리…… 왕십리는 시내 전차가 닿기 때문에 본시 들어오는 차에는 승객이 없으니 문제 밖이요…… 그다음 마장(馬場), 용두(龍頭)까지도 혼잡은 여전하다.
자연 그러노라니 타지 못하고 처지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 광장선(廣壯線)의 승객이란 언제나 빠안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를 거친 진보적 지식인 소설가 채만식(1902. 6. 17~1950. 6. 11)은 전북 임피에서 태어나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24년 12월 단편소설 「세 길로」를 발표(이광수 추천)하여 등단한 이후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소설 창작활동을 펼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2주 전 폐결핵으로 영면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전(傳) 소설인 『심청전』과 『춘향전』 등의 영향 아래 『탁류』, 『태평천하』와 같은 장편소설을 통해 새로운 풍자의 미학을 선보였으며,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소망」, 「생명」과 같은 빼어난 단편소설을 남긴 작가다. 또한 일제 말기 자신의 대일 협력문제를 성찰한 「민족의 죄인」과 「낙조」를 발표함으로써 민족과 개인과 사회의 문제에 관한 천착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소설 외에 수편의 희곡과 시나리오 작품을 남긴 그의 다채로운 이력과 실험적 기법으로 인해 채만식 문학은 오늘날에도 끊임없는 문학 연구자와 독자들의 주목을 이끌고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에 그의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한 채만식문학관이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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