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콘의 후예 : 하루 한 편 짧은 소설 27
무덥고 답답한 것은 오히려 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몰려드는 파리떼야말로 역물이다.
편집 시간을 앞두고 수선스럽고 어지럽고 초조한 편집실의 오후를 파리떼는 제 세상인 듯 들끓고 있다. 얼굴과 손을 간질이다가는 목탄지 위에다 불결한 배설을 하고 날아가곤 한다.
“추잡한 방안이 천재의 있을 환경이 못 되누나.”
삽화가 마란은 시간이 촉박하였음에도 그날 소설에 들어갈 삽화를 아직도 그리지 못한 채 파리와의 싸움에 정신이 없다. 천재로 자처하는 그에게 휘 답답한 편집실은 버릇없기 짝없는 곳이다.
“천재를 괴롭히는 이놈의 추물 - 이놈의 미물 - 이놈의 속물…….”
파리채 밑에서 한 마리 두 마리 꺼꾸러져 책상 위에 볼 동안에 적은 시체의 무더기가 늘어간다. 마란이 중얼거리는 어투에는 비단 파리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편집실 안에 웅성거리는 천재 아닌 뭇 미물들을 조롱하는 마음도 있다. 국장을 비롯해 과장, 부장, 주임, 기자, 사무원, 급사 등 흡사 파리떼만큼이나 흔한 속물들도 마란의 비위에는 파리떼와 고를 배 없는 평범하고 용렬하고 하잘것없는 존재로밖에는 비취이지 않는다. - 조물주는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도 흔한 미물들을 파리떼와 인간들을 만들었누. 이 흔한 미물들이 죄다 조물주의 똑같은 총애를 바랄 권리가 있단 말인가.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영문학과를 마쳤다. 경향문학이 활발하던 당시 유진오와 더불어 동반작가로 활동했다. 1928년『조선지광』에「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총독부 검열계에 근무하다 비난이 일자 경성으로 가 경성농업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하고, 자연과 인간의 본능적인 순수성을 추구, 구인회에서 활동하는 등 문학적 전환을 했다. 41년 중요한 수술을 받은 후 42년 36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저서로는『낙엽을 태우면서』『메밀꽃 필 무렵』『들』『분녀』『석류』『화분』『벽공무한』등이 있다.
라오콘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