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검열, 제도 · 텍스트 · 실천
일제강점기 연구에서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방법론적 문제의 하나는 이 시기에 생산된 텍스트나 자료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동안 한국 학계를 지배해온 실증주의적 패러다임에 의하면 일정한 사료비판을 거친다 할지라도 문자로 기록되거나 공간된 자료는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과학적 연구의 기초자료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만약 그 자료들이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한 번 걸러진 것이라면, 문서자료뿐 아니라 영화, 음반, 그림, 만화를 가릴 것 없이 공개적으로 출판된 그 모든 텍스트들이 식민지 권력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된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그것들을 객관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학술연구를 위한 질료로 삼을 수 있는 것일까?
식민지기의 신문이나 잡지들에 실린 글들이 부분적으로 또는 통째로 지워지거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언어들이 사라지고 침묵만이 드러나고 있을 때, 어떤 작품이 매체를 통해 발표된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변형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작품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연재 도중 검열로 중단되어 완성되지 못한 작품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른 동일 작품들의 정본을 어떤 기준으로 수습할 것인가 등의 고민스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검열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제는 한국뿐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출판경찰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발전시켰다. 일본의 ‘제국’을 구성하고 있던 각 지역의 출판경찰은 유사한 법령과 제도하에서 연보나 월보를 발행하여 정보를 공유하면서 주민들의 표현과 사상을 통제하였다. 특히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해진 1920년대 후반부터 검열방식과 기록들은 뚜렷하게 제도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검열제도의 체계화 속에서 생산된 출판경찰의 검열기록은 모든 식민지 텍스트에 대한 완전한 장악과 통제의 욕망을 드러냈다. 이 검열기록들은 ‘책을 읽는 제국’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상을 보여주는데,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텍스트를 끊임없이 읽고 번역하는 제국의 행위는 언제나 식민지인과 식민지의 정치상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읽는 행위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과 무관하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르시시즘적 독자인 제국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그동안 검열연구회는 한국의 역사 경험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론’ 생성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해 왔다. 검열연구는 밖의 자극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근대의 현실 자체에 주목하는 과정에서 추동된 자생적 고민의 산물이다. 아울러 권력과 담론의 관계를 탐색한다는 폭넓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검열연구회
정근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최경희 미국 시카고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
한기형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한만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책머리에
제1부 식민지 검열의 정책과 제도
일제하 검열기구와 검열관의 변동
도서과의 설치와 일제 식민지출판경찰의 체계화, 1926∼1929
식민지시기 문학 검열과 인쇄자본
식민지 검열정책과 사회주의 관련 잡지의 정치 역학
제2부 검열과 텍스트
문화정치기 신문의 위상과 반검열의 내적 논리
식민지 검열장의 성격과 근대 텍스트
식민지 시기 문인기자들의 활동과 검열
1920년대 식민지 검열 시스템의 출판물 통제 방식
제3부 식민지 예술문화와 검열
1920∼1930년대 총독부의 미술검열
일제시대 음반검열
식민지시대 연극의 검열과 통속의 정치
식민지기 영화 검열의 전개와 지향
제4부 검열과 근대 동아시아
출판·검열의 양태와 그 천이
일본통치기 대만의 ‘검열’ 실태
1930년대 후반 조선주둔일본군의 대 소련, 대 조선 정보사상전
필자 소개
논문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