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한국문학 Best)
나도향의 초기 작품은 대체로 환상적이고 달콤한 분위기를 풍기는 낭만주의 계열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낭만주의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나, 냉혹한 관찰 위주의 자연주의를 실험하다가 사회적 갈등의 누적을 해결하는 낭만주의로, 그 다음에는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인간형에 몰두하는 사실주의적인 성향으로 나아간다.
24세 때인 1925년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 등의 우수한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물레방아』는 마을에서 가장 부자요, 세력이 있는 신치규 노인과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방원 내외 사이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금력과 권세를 미끼로 유부녀를 마음껏 농락하는 신치규와 같은 치한이나, 물질적 허영에서 하루아침에 남편을 배반하고 색마의 품안으로 전락하는 방원의 아내나 생활력의 무능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기는 방원과 같은 불행한 인간이라든가, 이로 인하여 결국에는 살인ㆍ자살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오늘의 사회면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벙어리 삼룡이』는 오생원 댁의 머슴 삼룡이라는 주인공의 얘기다. 신체적 불구와 함께 신분적인 멸시를 받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을 통해, 고결한 사랑의 가치, 독자적인 인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불의 이미지 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뽕』은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안협집과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무능한 그의 남편 노름꾼 김삼보, 안협집의 몸을 노리는 머슴 삼돌이 사이의 희극적인 사건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처한 가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손쉬운 교환 가치, 또는 본능 충족 수단으로서의 성에 탐닉하고, 그것을 작가는 냉정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행랑 자식』의 소년은 자존심이 강해서 유달리 가난에 대한 자의식이 예민하다. 자신의 잘못도 없이 하루에 두 번 맞게 된 날, 그는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소년 주인공의 투명한 시선을 통해, 작가는 가난의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심리를 예리하게 그려 내고 있다.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백조」를 창간하고『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과 날카로운 필치를 바탕으로 하여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에 대하여 김동인(金東仁)은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하였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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