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과 열 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찐하게 공감하고, 키득거리며 가출을 모의하라!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리고, 어디서도 지친 영혼을 뉘일 곳을 찾지 못하고 사는 남자들. 남자들은 가출(일상의 일탈)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하지만 시간 또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가출을 미루지만 실제로는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과 편한 잠자리를 버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삶이 무료해 살아가는 재미를 찾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가출을 유쾌하게 모의해보라. 이때 가출하면 몸고생이라는 주의사항은 꼭 기억해야 한다.
“돛을 올리고 로프를 묶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이마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친 줄도 몰랐다.”라는 허 화백의 말처럼 가출이란 일상을 버리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활력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불어넣는 윤활유인 셈이다.
주말에 아내가 여행 가면 짜증나거나 아무 때나 불러낼 친구가 줄어드는 대한민국 남자들, 회사와 일이 일순위였다가 어느 날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들의 집단가출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허영만과 열 세 남자의 무모한(?) 도전은 자기가 좋아하는 로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행동해보지 못한 남자들의 심리적 ‘대리만족’을 통렬하게 채워줄 것이다. 특히 가출 경험이 화려한(?) 허영만 화백의 위트있는 그림과 우리 바다 우리 섬의 풍광이 담긴 사진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이 男子들, 이게 바로 ‘사는 맛’이다!
에피소드1 : 술이 웬수. 모든 사건은 술자리에서 시작된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평소 말없고 얌전하던 사람도 호기를 부리기 시작한다. “내가 왕년에 여러 여자 울렸어!”, “젊었을 때 17명하고 싸워서 이겼지!”, “내가 말야~ 지금은 이렇지만 정말 잘나가던 사람이야”, “내가 맘만 먹으면 뭐든 하지. 그까지것 마라톤 종주 참가하지 뭐.”…. 이 정도는 애교. 술기운에 던진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일이 일파만파 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적한 인사동 술집에서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허영만 화백의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바다에도 길은 있지?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동안 산으로만 다녔지?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보자.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옆에 있던 히말라야 사나이 박영석 대장이 허 화백을 거들었다.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야, 그거 좋은데요.”
쇠뿔은 단김에 뽑혔다. 한반도 바닷길을 무동력 돛단배로 일주하기로 결의한 14명의 중년 남자들은 건조된 지 15년이 지난 낡은 요트를 덜컥 마련했다. 그리고 여섯 달에 걸쳐 낡은 배의 수리를 끝낸 후 그들은 드디어 2009년 6월 6일 경기도 전곡항을 출발하여 서해 끝 격렬비열도에서 마라도, 울릉도를 거쳐 동해 끝 독도까지 1년간의 한반도 해안선 일주 대장정에 돌입했다. 바다에 관해서, 항해술에 관해 백지 상태였던 그들이 가진 거라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어린아이 같은 모험심, 호기심이 전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그들 앞에 닥칠 커다란 시련을 예상하지 못했다.
에피소드2 : 집 나가면 생고생?!
요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눈부신 햇살 아래 미녀와 와인 잔을 기울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는 여유. 그러나 현실은 오 마이 갓~. 허영만 선장과 집단가출호 대원들은 ‘웃자’고 시작한 이 일에 ‘죽자’고 덤비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곡항을 떠나 남해와 동해를 훑고 독도를 돌아 삼척에서 마침표를 찍은 바닷길 일주. 전곡항과 삼척항의 육상 직선거리는 218킬로미터다. 자동차로 달리면 4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 지척의 거리를 영해기점이 되는 외곽 섬들을 거쳐 바닷길로 에워 돌아가는 데 만 1년이 걸렸고 총 항해거리는 3,075킬로미터였다. 이 기간 동안 허영만 선장과 열 세 남자의 무동력 돛단배를 타고 떠난 일주는 생고생의 연속이었다.
밤낮없는 깔따구 모기들의 공습을 견뎌야 했고, 추운 겨울에도 시멘트 바닥에 침낭 하나 의지하고 자야 하는 비박에 익숙해져야 했으며, 히말라야 사나이 박영석 대장도 두 손 든 배멀미에 시달렸다. 바람이 없는 날은 배가 전진하지 않아서 걱정, 바람이 강한 날은 높은 파도와의 사투에 위험에 처한 적도 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흔들리는 배에서 곡예 자세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항해 기간 동안 아름다운 여인도 와인을 마셔보는 낭만을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집 나가면 생고생’이라는 진리를 몸소 체험하면서 그 생고생 이면에 숨겨진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고생의 대가로 그들은 대한민국의 바다와 섬과 해안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가슴으로 깨달았고, 싸나이들의 찐한 우정을 얻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는 맛’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집단가출호의 전체 항로
생고생 열전
요트 일주를 위한 도움말
준비 :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 가는 게 어때?
1차 항해 :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양보할 수 없는 낭만
경기 전곡항, 인천 굴업도, 선갑도, 경기 풍도, 전곡항
2차 항해 : 서해 끝, 격렬비열도
전곡항, 충남 격렬비열도, 외도, 오천항
3차 항해 : 이 땅의 숨은 고수들
오천항, 전북 어청도, 십이동파도, 상왕등도, 목포
4차 항해 : 히말라야는 올라도 멀미는 못 이겨
목포, 흑산도, 우이도, 목포
5차 항해 : 제주도의 그림 같은 풍경과 바꾼 한치 한 상자
목포, 제주 도두항, 화순항, 마라도, 화순항
6차 항해 : 예리한 바람에 파도를 가르고
화순항, 신양항, 거문도, 여수
7차 항해 : 항해, 그 생고생이 재미다
여수, 소리도, 경남 물건항
8차 항해 : 추위도 녹여버린 보석 같은 푸른 섬들
물건항, 통영 욕지도, 거제 지세포, 이수도, 진해
9차 항해 : GPS가 없어도 바람이 우리편!
진해, 부산 수영만, 울산 방어진, 일산항, 포항 양포항
10차 항해 : 서남해 파도가 잽이라면 동해는 헤비급 펀치
양포항, 영덕 강구항, 축산항, 울진 후포항
11차 항해 : 세월을 견뎌낸 기분 좋은 빚
후포항, 삼척 장호항, 금진항, 속초, 삼척항
12차 항해 : 독도다! 독도가 보인다!
삼척항, 울릉도 사동항, 저동항, 독도, 삼척항
에필로그
허영만 선장과 집단가출호 대원들
허영만
진지한 사회 참여적 성격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굵직굵직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섬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이 사회, 특히 지식층의 만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준 이 시대 대표적인 작가이다.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박문윤, 엄화자, 이향원 작가의 문화생을 거쳐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며 공식 데뷔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문제작들을 발표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얻고 있다.
『각시탈』『무당거미』등은 초기의 대표작으로 만화판에 이름을 알린다. 80년대를 지나며 진지한 사회참여적 성격을 띈 『벽』을 비롯하여 이데올로기 만화 『오! 한강』을 발표하는데, 이들의 대중적 성공으로 일반 상업매체로서 한정되었던 만화의 소재와 주제의식을 폭넓게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90년대 사회의 단면을 만화적 시각으로 조망한 『아스팔트 사나이』『비트』『미스터Q』『오늘은 마요일』『짜장면』등을 통해 대가로서의 위치를 각인시킨다. 일부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며, 사오정 시리즈를 유행시킨 『날아라 슈퍼보드』는 애니메이션으로서 방송사상 최초로 시청률 1위에 올랐다. 그 후 『사랑해』『타짜』『식객』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신문에 연재됨으로써, 만화가 사회에 얼마나 큰 스펙트럼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200편이 넘는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그 중 11개 작품이 애니화, 드라마화, 영화화 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작품들은 누구보다 주목받으며 영상화 섭외 영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철저한 프로의식, 올곧은 작가정신 속에 장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의 작업은 지금도 30년 전과 다름없이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우리는 그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서슴없이 손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