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불행 - 카프카 단편선
“삶의 찬란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멀고 깊은 곳에 있다”
가장 카프카다운 짧은 소설 55편
카프카 문학의 씨앗과 출발
현대문학의 암호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은 20세기 대표적인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과 초단편 소설 55편을 실은 《우연한 불행》이 프란츠 카프카 사후 100주년을 맞아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카프카가 처음 출간한 소설집 《관찰》 수록작을 비롯해 모두 불태워주길 바랐던 유고 더미에서 발견한 단편과 초단편, 책을 만들고 옮긴 이들의 글을 담아 카프카 문학에 입문하는 독자들에게 충실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프란츠 카프카 역사 비평판을 출간하며 널리 알려진독일 피셔 출판사에서 구성한 이 짧은 비유담들에는 “우리가 ‘카프카답다kafkaesque’라고 부를 만큼 그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농축되어 있다”.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언어들, 우연하고 찰나적인 꿈의 이미지,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는 카프카 문학의 씨앗으로서 이후 작품들에서 반복되며 싹을 틔운다.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피셔 출판사 편집자 제바스티안 구골츠가 쓴 서문은 카프카의 짧은 산문이 가지는 문학적 의의를 살펴보고(〈편집자 서문: 카프카의 비눗방울〉), 원문을 살려 직역에 가깝게 옮긴 번역가 박종대의 해제는 카프카의 일생을 돌아보고 개별 작품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더했다. 원서에는 일부만 수록되어 있던 소설 〈유형지에서〉는 카프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실었다.
우연한 불행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을 위한
우울과 불안, 허무와 고독의 문장들
프란츠 카프카의 ‘인간 실격’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욘 포세는 카프카의 작품을 “기존의 다른 문학 작품들과 한데 묶일 수 없다. 비록 형식은 짧은 산문과 장편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그만의 장르, 아니 그만의 장르들을 창조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썼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독보적인 문학성을 보여주는 카프카의 소설들은 그만큼 난해하고 괴괴하게 여겨져 대표작 《변신》을 제외하고는 쉽게 접하기 어렵기도 하다.《우연한 불행》은 그런 독자들을 카프카의 문학 세계에 초대하는 마중물이 되어준다. 단편과 초단편으로 구성되어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으며, 비교적 메시지가 명확한 작품과 곱씹어 읽게 되는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뿐만 아니라 100년 전 카프카가 당면했던 현실은 지금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고 실수를 피할 수 없다. “삶의 찬란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멀고 깊은 곳에 있”는 듯하고 불행은 우연히도 찾아온다. 아무리 도망쳐도 불쑥불쑥 나타나 얼굴을 들이미는 우울과 불안, 허무와 고독은 카프카 문학의 정수이자 출발점으로, 기도문이자 금언으로 읽히는 문장들이 작품 곳곳에서 쓸쓸히 빛난다.
결코 대비하거나 피할 수 없는 ‘우연한 불행’ 앞에서 길 잃은 이들, 안타깝게도 “올바른 장소에 있지 않다”고 느끼는 ‘인간 실격’ 청춘들에게 《우연한 불행》은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차가운 희망을 안겨준다. “네가 올라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계단도 멈추지 않고, 올라가는 너의 발아래에서 계단이 계속 생겨날 것”이기에, 불행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우리는 결국 끊임없이 희망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고 일러준다. 언젠가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필연한 행복이 찾아올 때까지. 찬란함은 보이지 않을 뿐 저 멀고 깊은 곳에 반드시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