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반대한다 - 무능한 민주주의를 향한 도전적 비판
민주주의를 해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철학적 고찰
이 책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유권자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하는 것을 시작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를 시도한다. 먼저 호빗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 속 호빗족에게서 빌려 온 것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지식도 많지 않은 비투표자를 말한다. 이어서 훌리건은 스포츠의 광적인 팬을 뜻하는 그 훌리건과 동일한 의미다. 다만 이 책에서는 정치의 광적인 팬으로 쓰인다. 이들은 정치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지녔지만, 정치 지식을 편향된 방식으로 소비한다. 꾸준하게 투표하는 대부분의 유권자와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 그리고 정치인 대다수가 바로 훌리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벌컨은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뾰족한 귀의 벌컨족에게서 빌려 온 것으로, 아주 이성적인 유권자를 뜻한다.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편향적이지 않으며, 증거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브레넌에 따르면, 이상적인 민주주의 이론은 시민이 벌컨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브레넌은 대부분의 시민은 호빗 아니면 훌리건이며, 스스로 벌컨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사실은 훌리건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정치 참여는 호빗을 훌리건으로 바꾸고 훌리건을 더 나쁜 훌리건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정치 참여가 늘어난다고 해서 이성적인 유권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사실상 벌컨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결국 호빗과 훌리건이 주도하는 규칙이기 때문에 이론처럼 완벽하게 운영될 수 없다. 우리는 평등한 1인 1표를 통해 국가를 운영할 공직자를 공정하게 선출한다고 믿지만, 다수의 유권자가 잘못된 정치 지식이나 편향된 생각을 바탕으로 투표하여 모두에게 해로운 공직자를 선출하게 될 뿐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민에게 당신은 호빗인가 훌리건인가 묻기 위한 것도 아니다. 브레넌 역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민주주의는 우리 생각처럼 완전무결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브레넌은 민주주의에 관한 수많은 학자의 연구 문헌을 분석하고 가장 최근의 정치 이론을 꼼꼼히 살피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 나가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문제 제기의 결과물
브레넌은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에피스토크라시epistocracy, 즉 ‘지식인에 의한 통치’를 제안한다. 에피스토크라시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참정권 제한제’는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는 것이다. 혹은 ‘복수 투표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복수 투표제를 시행하면 민주주의처럼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지만, 더 유능한 시민에게는 투표권이 추가로 주어진다. ‘선거권 추첨제’ 또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선거권 추첨제에서는 어떤 시민도 투표권이 없으며, 선거 직전에 추첨을 통해 예비 유권자를 선발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필요하며, 특정한 사람에게 선거권을 주기 위해서는 유권자 능력 시험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는 수많은 정치학자의 문헌이 등장하고, 그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문제 제기가 뒤따른다. 브레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최신의 정치학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이고 친숙한 인물과 다양한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점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파이프 수리에 관한 배관공의 판단력이 더 뛰어나며, 항공기 조종사의 조종 능력이 더 뛰어나듯이,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도 분명 더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판단력을 갖춘 전문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가정이 등장한다.
에피스토크라시가 정말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숭고한 이념으로 여길 이유가 없다는 브레넌의 생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때때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가장 정의로운 일 중 하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역시 시민의 삶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물건을 고를 때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값어치 있는 물건일수록 고민은 더 깊어진다. 자동차나 집을 사기 위해 장단점을 고려해 보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왜 자동차나 집보다 중요한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의 단점을 보완한 더욱 업그레이드된 제품이 출시되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는 결코 등장할 수 없는 걸까?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한 정치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도구를 잘 마련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 책은 모두가 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시민사회 속에서 불합리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올 만하다. 또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사회 분열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꼭 한번 숙고해 볼 만한 담론을 담고 있다.
[추천사]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 규범인 민주주의의 도덕성에 도전한다. 브레넌은 유권자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제시한다. 진지하게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
_일리야 소민, 『워싱턴포스트』
브레넌은 선견지명이 있는 듯하다.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이라는 두 번의 충격이 있기 훨씬 전에 대중 민주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며, 비이성적이고 무능한 유권자는 민주적 의사 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했다.
_『소칼로 퍼블릭 스퀘어』
자신만만하며, 논증이 잘된 비판이다. 현재의 유독한 당파적 풍토에서, 브레넌의 논쟁은 다른 어떤 것보다 저울질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_『커커스 리뷰』
브레넌은 놀랍다. 우아한 방식으로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정치 참여가 어긋난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투표는 우리를 고귀하게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준다.
_브라이언 캐플런, 『합리적인 유권자의 신화』 저자
이 책은 건조한 담론의 영역에서도 흥미진진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터벅터벅 걷는 것이 아니라 깡충깡충 뛰는 것 같은 이론이다.
_몰리 사우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브레넌은 정치, 철학,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앞으로 수년 동안 답해야 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_토마스 새비지, 『저널 오브 밸류 인콰이어리』
도전적이며, 통찰력이 있다.
_알렉산더 윌리엄 솔터, 『퍼블릭 초이스』
무자비할 정도로 논증이 잘 되었다.
_니코 콜로드니, 『보스턴 리뷰』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정치철학과 정치 이론 모두에 유용한 도전을 한다. 매력적으로 서술된 이 책은 생동감이 넘치며,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_알렉산더 게레로, 펜실베이니아대학
대부분의 독자는 브레넌의 주장에 확실히 저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_제이콥 T. 레비, 맥길대학
최근 정치철학 분야 최고의 책 중 하나다.
_재커리 우드면, 자유주의 학생 단체 〈SFL〉
투표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때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 사이에서는 시체를 먹는 것이 죽은 자에 대한 존중을 의미했다고 한다. 브레넌에게 정치적 토론의 고귀한 힘에 관한 믿음은 미국 대학교의 남학생 사교 모임이 인격적이라는 가정보다도 근거가 없다.
_케일럽 크레인, 『뉴요커』
호빗을 훌리건으로, 훌리건을 더 나쁜 훌리건으로 만드는 현대 민주주의의 고질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자주 관찰되고 있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민주주의 이외의 대안, 에피스토크라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통찰은 한국 정치발전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_조화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