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전 시집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윤동주가 시집을 구하지 못해 필사까지 하면서 닮고 싶었던 시인
이름 앞에 유일하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두 명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 이상이 형태적으로 기존의 시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면 백석은 언어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시를 창조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인이다. 어떤 시가 더 창의적이냐고 묻는다면 이상이겠지만, 어떤 시가 더 시적이냐고 묻는다면 백석이라고 답하겠다.
백석은 6개 국어에 능통하였으며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는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던 수많은 단어를 사전 속에서 발굴하여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전반의 지평을 넓힌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임화, 황순원, 윤동주와 더불어 문학계 F4 중 한 명이었던 백석 시인의 별명은 모던 보이(Modern boy)였다. 그때 세련된 남성들을 모두 그렇게 불렀다. 1910년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183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는 어디를 가나 눈길을 끌었다고. 이런 옷차림은 당시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함흥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광경이었을 거다.
백석 시집 『사슴』은 1936년 1월 20일 국판 69쪽의 시집으로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자가 출판으로 한정판 100부만 찍은 시집이다. 값은 2원이었으며 시집 하단에 저작 겸 발행자 백석(著作兼 發行者 白石)이라고 적혀 있다.
시집의 수량이 적은 탓에 윤동주 시인은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 가서 노트에 백석의 시를 직접 필사해 읽었다고 한다.
윤동주는 그 필사본을 항상 가슴에 끼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좋아했으며 동생인 윤일주에게 편지를 보내 『사슴』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별 헤는 밤」은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의 발상 자체부터 표현 방식까지 무척 유사한데 특히 시에 등장하는 시어 중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외국 시인이 공통으로 들어간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윤동주라면, 시인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은 백석이라고 한다.
시밖에 모르는 백석이 시도 쓰지 못하고 농사일도 제대로 못했다
북한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없었던 백석은 평생을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부인 이 씨(이윤희) 말에 따르면 백석은 글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던지라 농사일을 제대로 못 해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도리깨질이 서툴러 동네 처녀애들에게 배웠을 정도로 농사일에 서툰 사람이었으나 하루에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도 가슴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며 지나갈 정도로 품성이 겸손해 삼수군에 사람 가운데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백석의 정확한 사망 일자와 관련해 1995년 1월 사망했다는 설도 제기됐으나 1996년 1월 7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중국 옌볜 조선족에게 들었다며 북한에 거주하는 백석의 유족들이 조선족 지인에게 직접 전한 소식이라고 밝혔다.
백석은 압록강 인근 양강도 삼수군에서 농사일을 하며 문학도를 양성하다 노환으로 1996년 1월 7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양성한 문학도들 다수가 중앙 문단에서 크게 인정받았다고 한다.
백석의 집에는 그의 창작 노트 등 그에 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남 백화제(白華濟) 씨의 말에 따르면 백석이 생존 시 남겼던 원고 모두를 휴지로 써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