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그리는 마음 -찬란한 인생의 순간, 꽃에 매혹된 화가의 명작들
고갱의 그림에는 왜 흰 꽃으로 장식한 여인이 자주 등장할까?
아를의 아몬드 꽃을 보면서 고흐는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까?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꽃 그림으로 남긴 화가들의 특별한 사연
이국적인 타히티섬의 풍경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낸 폴 고갱은 흰 꽃을 귀에 꽂은 여인들을 자주 그림 속에 등장시켰다. 문명이 닿지 않은 원시의 아름다운 숲과 꽃으로 둘러싸인 타히티에 정착했을 때, 그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티아레 꽃’으로 장식한 원주민들이었다. ‘향기나는 꽃’이라는 의미가 담긴 티아레 꽃은 축제나 행사가 있는 특별한 날에 귀에 꽂아 장식하는 풍습에 쓰인 꽃이다. 〈마리아에게 경배를〉 〈해변의 타히티 여인들〉 등을 그린 고갱은 자신의 작품을 파리로 가져가 전시했으나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은 채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20세기 초에 원시주의가 유행하면서, 그의 그림과 타히티의 삶은 이국을 향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고흐는 프랑스의 아를에서 눈처럼 흩날리는 아몬드 꽃을 보며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네덜란드의 습한 날씨에서 성장한 고흐에게 화사한 아를의 봄은 눈부신 희망과 소생의 기운을 안겨주었다. 그는 찬란한 빛을 받으며 아몬드 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꽃 등 과일나무 연작을 그려냈다.
“우린 아이를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고 부를 거야.
이 아이 역시 형처럼 강직하고 용감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어.”
_ 테오가 고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대범하게 가로지르는 아몬드 나무 꽃이 인상적인 〈꽃 피는 아몬드 나무〉는 사랑하는 동생 테오와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한 고흐의 선물이었다.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는 아몬드 나뭇가지처럼 힘차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 그림은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에서 지금도 사랑스럽게 빛나고 있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꽃은 연꽃일까, 수련일까?
백합은 왜 순수함과 고귀함의 상징이 되었을까?
평범한 꽃도 더욱 특별해지는 그림의 재발견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꽃 그림이 남겨져 있다. 연꽃인지 수련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이 꽃은 바로 수련이다. 벽화 속에는 푸른 수련과 흰 수련이 그려져 있는데, 푸른 수련은 새벽에 열리고 오후에 다시 닫히는 태양을 닮은 꽃이었고, 흰 수련은 밤이 되면 꽃잎이 피고 아침에는 꽃잎을 닫는 꽃이었다. 이집트인은 이 푸른 수련에 만물의 생명을 잉태하고 부활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흰 수련에는 죽은 다음에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영생의 소망을 부여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척박한 환경은 그들의 의식 세계를 지배했고, 그 일면을 수련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태고지〉는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했다고 전달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중세부터 현대까지도 자주 그려지는 종교화 중 하나다. 〈수태고지〉에서 천사는 항상 백합을 손에 들고 있다. 흰색을 고귀함, 순결, 청결의 색으로 여겼던 서양에서 흰 백합은 ‘마리아의 백합꽃’으로도 불렸다. 마리아가 임신 소식을 듣고 놀란 뒤 복종하는 장면에서 백합은 순결함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의미였다. 하지만 19세기 이후의 화가들은 마리아의 표정에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담아냈고,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남성 중심의 기독교 가치관을 거부하는 모습으로도 묘사했다. 각 시대별로 그려진 〈수태고지〉 속 백합은 마리아와 함께 다양하고 흥미로운 해석의 단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