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 산책
영국박물관과 BBC가 공동 기획한 역사 프로젝트
유럽사의 서문을 장식한 독일을 가다!
흔히 독일 하면 히틀러와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를 떠올린다. 혹은 무뚝뚝하고 딱딱한 독일 병정과 무서운 냉전시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이자 영국박물관장인 닐 맥그리거는 “독일은 최근의 시리아 난민처럼 혹독한 난민 시절을 겪었고 합의를 통해 작은 나라들을 이끌어온 느슨한 연합체”라고 말하며 독일의 건물과 물건, 사람과 장소를 통해 유럽사의 중심에 서 있는 독일사를 풀어낸다.
영국박물관과 BBC가 공동 기획한 역사 프로젝트
유럽사의 서문을 장식한 독일을 가다!
세계는 왜 독일에 주목하는가?
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세계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한 사람을 집중 조명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프랑스의 대표적인 통신사 [AFP],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스포트라이트가 향한 인물은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었다. 언론은 하나같이 메르켈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며 유로존 채무 위기와 시리아 난민 사태에 직면해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리더십을 주요 업적으로 꼽았다. 이제 독일은 누가 뭐래도 경제, 정치 등에서도 유럽 대륙을 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나라이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를 100년만 되돌려도 독일의 현재 모습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러 역사의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지 않았던가. 그런 독일이 불과 반세기 만에 물리적, 정신적 폐허를 딛고 일어나 경제 강국이자 정치 리더가 되어 유럽 공동체를 앞장서 이끌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영국박물관과 BBC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독일은 어떤 나라이고 독일인의 정체성에는 어떤 힘이 숨어 있는지 추적하였고, 영국박물관장이자 이 책의 저자인 닐 맥그리거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보며 그 실마리를 발견한다.
“수도 한복판에 수치스러운 역사를 담아 기념비를 세우는 나라는 독일뿐이다.”(본문 43쪽)
저명한 정치 평론가 미하엘 슈튀르머(Michael Sturmer)의 말처럼 “오랫동안 독일에서 역사의 목적은 그런 일이 절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부끄러운 역사조차 분명히 밝히고 이를 단호히 질책하며 미래로 이끄는 자세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국제사회가 수용하고, 그들에게 큰 역할을 맡긴 배경이었던 것이다.
독일 역사 인식의 출발점, 기념비
독일을 이해하기 위해 독일사 산책을 나선 저자는 우선 독일의 기념비에 주목한다. 독일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때문이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대륙이 혼란에 빠진 시기의 기록이 유럽 곳곳에 개선문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는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출정하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새긴 개선문을 파리에 세웠고, 영국은 나폴레옹에 맞서 싸운 웰링턴의 승리를 기리는 개선문을 런던에 세웠다.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국의 입장에서 세운 기념비이다. 물론 독일도 기념비를 세워 나폴레옹 전쟁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독일이 세운 기념비 중에서 바이에른 주의 도시 뮌헨에 세운 기념비는 파리나 런던의 기념비와는 다르다. 뮌헨 개선문은 ‘바이에른의 군대에게’라는 문구를 새겨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이에른 군대가 보여준 희생과 그들이 이룬 성취를 기념하고 있지만, 사실 바이에른의 군대는 전쟁 기간 대부분을 오히려 프랑스 편에 서서 같은 독일 민족을 공격하였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반(反)프랑스 진영에 가담하였다. 뮌헨 개선문에 담긴 승리에는 독일 민족에 대한 배신의 역사도 담겨 있는 셈이다.
지금은 같은 민족이라는 소속감이 강하지만, 1871년 통일되기 전까지 독일 민족에게는 공동의 목표 의식이 거의 없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큰 울타리 아래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자율적인 국가들로 나뉘어 근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독일 내 국가들은 각자의 이익에 맞춰 때론 연합하고 때론 갈등하며 고유의 지역 역사를 써왔다. 때문에 프로이센의 굳건한 성장 발판을 마련하여 이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프리드리히 대제도 프로이센에서는 영웅이었지만, 프로이센이 성장하는 데 좋은 먹잇감이 된 작센에서는 둘도 없는 악당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수세기에 걸쳐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형성한 다른 나라와 달리,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연합체로 천 년을 보낸 독일 역사에서 단일한 민족서사는 결코 써내려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대신 오늘날의 독일인 대부분이 공유하는 독일의 업적과 상처를 씨줄과 날줄 삼아 현대 독일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건물과 물건, 인물과 장소에서 독일의 업적과 상처를 읽다
저자는 독일인 대부분이 공유하는 그들의 업적과 상처를 건물과 물건, 인물과 장소에서 세심하고 흥미롭게 읽어낸다. 그중 가장 오랜 물건은 구텐베르크 성경이다. 15세기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경은 근대 유럽 문화의 토대 중 하나를 제공하였는데, 그때가 독일이 세계사의 흐름에 처음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순간이다.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가동 활자와 평압인쇄기가 일으킨 인쇄 혁명은 인류가 쌓은 지식을 널리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지만, 이는 구텐베르크라는 특출한 개인의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다. 당시 역사 배경이 큰 역할을 하였다. 구텐베르크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면죄부를 인쇄하여 충당하였고, 구텐베르크의 후배 인쇄공들은 60년 후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비판하는 반박문을 인쇄하여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다. 흥미로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15세기 마인츠에서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경이 가장 오래된 물건이지만, 저자의 산책은 15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독일민족의 뿌리와 만나는 등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독일 서북부에 위치한 데트몰트 시 외곽의 토이토부르크 숲에서는 기원후 9년 로마제국의 침략에 맞서 독일 부족을 연합해 싸운 게르만 민족의 영웅 헤르만이 독일인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독일제국 황제가 만든 가짜 샤를마뉴 왕관을 통해 1,000년 넘게 서유럽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퉈온 프랑스와 독일의 외교사를 되짚는다. 그리고 뉘른베르크에서는 길드 체제에서 장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일으킨 경제 기적의 원동력을 추적하고,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남아 있는 프로이센 왕국과 뒤이은 독일제국의 흥망성쇠가 담긴 역사의 흔적을 찾아간다.
독일사 산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은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이다. 연방의회 의사당은 독일의 현재와 미래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주도하여 통일을 이룬 독일제국의 의사당 건물로 화려하게 건축되었지만 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견제로 제 역할을 해보지도 못한 채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나치 정권 아래서는 방화로 훼손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동서 베를린 분단으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1990년 재통일 이후 새로운 독일의 연방의회로 다시 태어나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요동치는 독일의 역사
“독일?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습니다.”
이 질문은 외국인이 조각조각 나뉜 18세기 독일 지도를 들여다보며 헷갈려서 묻는 것이 아니다. 독일문학의 거장 괴테와 실러가 1796년에 공동으로 발표한 시집 《크세니엔Xenien》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괴테와 실러가 질문을 던진 18세기는 물론, 20세기에도 독일의 국경선은 쉼 없이 움직였고, 그 안에서 역사는 늘 요동쳤다. 청년 괴테가 독일 예술과 역사의 고유한 특징을 발견한 슈트라스부르크는 프랑스의 도시 스트라스부르가 되었고,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는 현재 러시아의 도시 칼리닌그라드이다. 끝없이 떠돈 국경선과 작은 국가들이 자기만의 역사를 써온 독일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좇는다고 해서 독일을 이해하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선별한 건물과 물건, 인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사의 고리들을 하나하나 풀어 가면 독일사의 주요 흐름은 물론 오늘날의 독일과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