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키토브(상)
"탁자 위에 놓인 스투키가 되고 싶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가? 사람의 행동
을 방해하지 않는 동선에 놓여 짙은 초록색 빛깔을 내뿜는 스투키가 나는 좋
다. 아무도 스투키가 그 자리에 있다고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투키
가 사라진다고 누가 걱정이나 할까? 존재하면 미약하게나마 미관을 살리고
사라져도 타인의 공간을 그대로 살리는 그런 물질이고 싶다.
참 쓸모없는 겁쟁이다.
진심이었지만 결국 거짓말이 돼 버린, 프러포즈하면서 말했던 달콤한 다짐
들, 아이의 성장만큼 비례하는 양육비의 부담, 어느 순간부터 연차가 쌓일수
록 퇴보하고 있다는 비참함, 그리고 얼마나 멍청한지 스스로 증명한 골방에
갇힌 한심한 내 모습. 그렇게 청춘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한다. 나라는 존재
가 세상에 있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우울함으로 40대를 보낸다. 불안함
을 감추려고 더욱더 글쓰기에 몰두한다.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겁쟁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내 공간의 자물쇠를 굳게 채우고 살아간다. 그렇게 세상에
서 나를 지우려 한다. 그렇게 잊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은 다르다. 승기와 우현이의 시선은, 홀로 지낸 무한의 시간은 나름대로 의
미가 있다고 속삭인다. 나를 바라보던 불안한 시선과는 사뭇 다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시선이다. 고맙다, 승기야 그리고 우현아. 너희가 있어
서 참 다행이다. 외롭지 않구나. 더는.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