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 안 "조선 양반 문화" 중심의 답사를 거부하고, "근현대 서민 문화"를 중심에 둔 답사기로 큰 주목을 받은 『서울 선언』(2018)이 시즌 2로 돌아왔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 김시덕 교수의 신간 『갈등 도시』는 이제 스케일을 키워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까지 답사 범위를 넓힌다. 전작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그의 답사 대상은 고궁이나 문화유적이 아니다. 재개발이 예정된 불량 가옥과 성매매 집결지, 이름 없는 마을 비석과 어디에 놓여 있는지 찾기도 힘든 머릿돌이다.
『갈등 도시』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심지어 부제는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이다. 저자의 눈에 비친 서울은 내부적으로도, 경계를 맞댄 주변 도시들과 그 도시들 간에도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싼 이해 충돌과 부자 동네와 못 사는 동네를 편 가르는 지역 간 반목이 두드러진다. 어느 재개발 지역의 벽보에는 "북핵"이나 "경주 지진"보다 당장의 재개발 문제가 시급하고 위중하다고 쓰고 있거니와, 분당 시장 인근 화장실에서는 성남 시민들을 향해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 망언에 버금가는 노골적인 혐오 표현이 발견된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저자는 현대 서울의 역사를 배제와 추방의 역사로 이해한다. "서울이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서울 시민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시설과 사람들을 경기도로 밀어낸 역사"라는 것. "서울 곳곳의 빈민촌에 살던 10여만 명을 지금의 성남 원도심인 광주 대단지에 보낸 것이 그러했고, 서울시에서 사용할 화장장을 고양시 덕양구에 세운 것"이 그러했다. 혐오 시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청결"하고, 가난한 자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계급적으로 "균질"해진 서울"특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지대에 빈민촌과 화장터, 사이비 종교 시설, 군부대가 몰려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제와 추방은 비단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대상들, 즉 빈민과 한센인, 혐오 시설과 군사 시설만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 재개발이나 국가 정책에 의해 내몰리기 전까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서민·시민들의 문화와 역사까지 송두리째 지워져 왔다. 그렇게 서민·시민들의 역사가 지워진 자리에는 조선 시대 왕과 사대부의 문화(지명, 기념비, 건축물)가 거듭 소환되고, 새로운 역사 미화가 벌어진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이것은 "기억의 전쟁이자 계급의 전쟁"이다. 저자가 굳이 이 전장에 뛰어들어 "시민들이 갈등하며 살아가고 또 죽어 간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소개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이다. 조선·명·일본 간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다. 고문헌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서 전쟁이 초래한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을 추적해왔다. 나아가 한반도가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여느 국가와는 다른 궤적을 그렸다는 인식이 실상과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일본에서 펴낸 박사학위논문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 - 한반도·유구·오호츠크 해 연안]으로 2011년 외국인 최초로 일본 고전문학학술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한국 동방문학비교연구회의 석헌학술상 수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히데요시의 대외전쟁』(공저), 『그들이 본 임진왜란』, 『이국과 일본의 전쟁과 문학』(공저), 『교감 해설 징비록』, 『그림이 된 임진왜란』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시민의 도시를 걸을까 제1장 대서울이란 무엇인가대서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들 [경인(京仁) 메갈로폴리스]의 탄생과 수도길 [경인]이라는 지명의 분포 부평 평야 서해 바다를 통해 이어지는 대서울 한강을 통해 이어지는 대서울과 평민의 신앙 [부군당] 제2장 도시 문헌학과 도시 화석문헌학자처럼 대서울 걷기 도시 문헌학 도시 화석 머릿돌 튀어나온 철근 마을 비석, 기념비, 추모비 가게 간판 제3장 갈등 도시, 대서울을 걷다경인 메갈로폴리스의 축1 봉천동·신림동: 남서울과 대서울의 도시 2 상도동: 잠시 존재하는 풍경들 3 흑석·노량진·대방·신길: 경인 메갈로폴리스의 동남부 4 영등포: 철도와 부군당 5 서울·부천·광명·시흥·안양의 경계에서: 대서울 서남부의 공업·군사 벨트 6 파주와 고양: 무게 중심의 이동 7 고양에서 가좌까지: 핫 플레이스 너머의 대서울 8 구파발 사거리에서 독립문역 사거리까지 :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의주로 대서울의 한가운데9 해방촌: 비교 도시사와 삼문화 광장이라는 관점에서 10 종로 5·6가: 겨울, 피맛길에서 11 을지로: 서울 100년의 시층(時層) 부록 을지로의 풍경들 12 이태원, 보광동, 한남동: 신앙의 길 대서울의 과거·현재·미래13 약수에서 길음까지: 집단 주택의 박물관 14 길음에서 창동까지: 묘지·철거민·공장·고층 아파트 단지 15 의정부: 변화하는 정체성 16 남양주: 천부교·원진 레이온·마석, 그리고 다산 신도시 17 강남 답사 전략: 농촌 강남, 영동 개발, 군사 도시 18 성남: 광주 대단지, 분당, 판교 세 도시 이야기 19 용인: 확장 강남의 남쪽 끝 20 의왕·군포·안양·과천·사당·방배·이수 : 대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