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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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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저자
류은숙 저
출판사
낮은산
출판일
2019-11-08
등록일
2020-02-18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9M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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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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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 속으로
장소가 의미 있으려면 소속감을 느끼고 나를 인정받는 곳이어야 한다. ‘소속감’을 느끼려면 동료가 있어 야 한다. 나의 부엌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끔찍한 고립의 장소였고, 거기서의 경험은 나누거나 전승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 신세 한탄이 될 뿐이었다. “나 이렇게 힘들었어”라고 운을 뗄 때마다 ‘또 시작이네’라는 눈총을 받는 이야기는 경험으로 전승될 수 없다. 바깥사람, 바깥일 하는 사람은 ‘돌아갈 집’, ‘기다리는 집밥’을 생각하며 버틴다지만, 부엌에 매인 사람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 안락을 낳는 장소에서 거기에 속한 사람은 정작 안락이 없다.
- <부엌>에서

긴장 속에서 연단에 설 때마다 두려움과는 다른 어떤 울렁거림도 있다. 그건 연단의 역사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연단에 등장할 수 있기 위해 숱한 이들이 모욕감과 두려움의 자갈길을 밟아 왔다. ‘물러나는’ 것으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는 삶을 버리고, ‘튀어나오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기에 지금 나의 자리가 연단에 마련될 수 있었다. 여성들은 무리를 지었고, 금지된 장소를 점거했고, 문제의 장소를 원래 정해진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고, 어떤 장소를 버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연단에서 끌려 내려온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 <연단>에서

내가 자라면서 본 할리우드 영화들 속에서 여성들의 여행은 부자 애인을 만나 결혼하기(신데렐라 되기), 사랑의 도피행(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혹은 폭력 남편이나 죽음의 위협 등 절박한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장소 벗어나기’였다. “여기서 나가자( get out of here)”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제일 많이 쓰인 대사라는데, 여성들 여행의 시작도 ‘일단 여기를 벗어나자’가 아니었을까.
- <여행지>에서

빈소는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상을 당하여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글자에서 ‘텅 빈’ 장소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비어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장소 투쟁, 역할과 지위의 투쟁이라니, 뭔가 허탈하다. 상호 평등에 기초해 구성되고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지정된 역할에 따른 차별적인 관계가 더 불거지는 곳,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장소를 둘러싼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가?
- <장례식장>

모든 혐오는 ‘제 장소를 벗어나 있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기에 벗어난 것 은 뭔가 오염되고 불결한 것이 된다. 오랜 세월, 집 ‘밖’에 나가 일하는 여성은 제 장소를 벗어난 존재로 취급됐고, 일하는 당사자는 ‘바깥’ 노동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여성이 밖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부양받고 있지 못하다는 신호였고, ‘안’에 있어야 할 것이 ‘밖’에 있는 것은 뭔가 이상한 것이 돼 버린다. “일 나간대”라는 말이 여성과 붙어 쓰이면 무슨 ‘탈선’의 증거인 양 수군거려졌다. ‘직업여성’이란 희한한 말이 통용되기도 했다. 이 말은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제 장소에 있지 않다고 지목된 여성과 제 장소에 있는 여성(‘주부’)을 가르는 말로 ‘직업’이란 게 쓰였다는 게 괴이하다.
- <일터>에서

그런 자리에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갈라 온 이중 잣대인 ‘창녀’와 ‘요조숙녀’ 사이에서 갈등한다. ‘파티 걸’ 역할을 잘하는 여성을 보면, 묘한 이중 감정을 느낀다. 질시와 거북함이 교차한다. 여성은 잘 끼어 놀아도 욕을 먹고 안 끼어도 욕을 먹는다. 사회적 유대와 관계의 장에서 배제되는 건, 내 개별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임을 실감하게 된다.
- <파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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