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우주
대칭부터 전기와 자기까지, 약한 상호작용부터 끈이론까지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다 보면, 현대 물리학이 보인다!
외계인에게 왼손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인류가 멸망하고, 「허생전」만 남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지구를 방문한 어떤 지적 생명체들이 「허생전」에 실린 다음 문장을 해독했다고 해보자.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 그들 나름대로 왼쪽과 오른쪽의 개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허생전」에서 어떤 손을 ‘오른손’으로 정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생명체들에게는 앞의 문장이 단지 “아이들을 낳거들랑 뾰로롱손에 숟가락을 쥐고”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왼손이나 오른손을 알려주려면, 우리는 「허생전」에 어떤 기록을 덧붙여야 할까?
놀랍게도, 1956년까지만 해도 모든 물리학자가 어떠한 기록으로도 왼손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려면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해야 하는데,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현대 물리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이 책은 익숙해 보이기만 했던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를 구별하다 보면, 전기와 자기, 자연의 네 가지 기본 힘, 더 나아가 대칭성 깨짐과 차원, 우주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이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는 왜 이토록 우주와 깊이 얽혀 있을까? 20세기에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이 깨달은 것처럼, 대칭과 대칭의 깨짐이 자연 법칙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보존 법칙은 자연 법칙의 시간 이동 대칭으로부터 유도되고, 운동량 보존 법칙과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각각 자연 법칙의 공간 이동 대칭과 회전 대칭으로부터 유도된다.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 모든 물리 법칙의 (연속) 대칭은 보존 법칙과 대응한다. 다른 한편으로, 양자역학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은 이미 우주와 질량의 기원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닮았다는 점을 아는 것은 대칭을 이해하는 것이고,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아는 것은 대칭의 깨짐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저 익숙해 보이기만 하는 왼손과 오른손에, 우리 우주의 작동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조금, 아주 조금 과장해서, 대칭이 빠진 물리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필립 앤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