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교이야기 The Story of Heiqiao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위치한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과 의혹에 대한 단편소설. 黑橋(흑교)는 중국 베이징의 지명 중 하나로 예전에는 소매치기와 범죄자가 모여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많은 미술작가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다. - 본문중에서 엉겁결에 가지고 온 검은 중절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보고 있다. 지훈은 아까 자신의 옆을 뛰어간 사람을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그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모자를 눈앞에 두고 보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 짧은 순간이 꿈이 아니었을까. 마그리트의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은 검은 중절모를 요즘도 쓰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의심스럽다. 모자의 위쪽은 땅에 뒹군 덕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지만 아직 새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같은 곳에서 그 때의 유행을 만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차라리 이 모자는 여기보다는 상하이에나 어울릴 물건이다. 현재의 시간과 아무 관련이 없는 물건이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는 것에 지훈은 당혹스럽다. 모자를 처음 집었을 때의 눅눅한 느낌과 잠시 맡았던 장미향이 그의 흔적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오히려 실제로 만져지는 이 검은 중절모는 이름 모를 그가 남긴 흔적이라기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파편처럼 느껴진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모자에서 희미하게 꽃향기가 배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