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약속
그녀의 조교였던 제롬 콘이 엮은 ≪정치의 약속≫은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의 출간 이후부터 1958년 ≪인간의 조건≫이 쓰일 무렵까지의 1950년대 유고들을 중심으로, 주로 서양 정치철학의 전통과의 씨름, 정치의 특징에 대한 발견과 그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7편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로 실린 글 〈소크라테스〉에서는 그녀의 정치에 대한 입장의 원형이 서양 정치철학의 전통을 세운 플라톤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어지는 글들에서 아렌트는 서양 정치사상의 전통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전통에서 비롯된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지적하며 자신이 마르크스에게까지 이어지는 ‘전통’에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책의 절반이 넘는 〈정치로의 초대〉에서 아렌트는 그리스적 정치 개념과 로마적 정치 개념의 차이를 설명하며 정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어떤 의의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 외에도 권력과 폭력의 문제 및 판단이론의 원형이 되는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글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아렌트 사상이 성숙하면서 나오는 발전사적 관점에서의 의의뿐 아니라, 정치에 대해 풍부한 생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돋보이는 아렌트의 박식함과 풍부한 상상력은 정치 사회적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훌륭한 자극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