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와 - 유희경 에세이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기다림의 마음을 손으로 새기는 시간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하고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유희경 시인의 필사 에세이 《천천히 와》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인이 직접 써 내려간 에세이 25편과, 독자가 시인의 문장을 따라 써볼 수 있는 필사 공간을 더해 한층 밀도 높은 특별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에게 ‘기다림’은 어쩌면 삶의 방식에 가깝다. 손님을 기다리고, 누군가와 나눌 대화를 기다리고, 봄이 오기를, 첫눈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끌리기를, 사로잡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단지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닌,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다. 《천천히 와》는 그런 믿음의 시간들을 한 편 한 편 산문으로 담아낸 책이다. 익숙한 사물과 풍경, 날씨와 계절,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세심하게 바라보며 써 내려간 글들에는 기다림에 깃든 다양한 감정의 결이 배어 있다. 다정함, 쓸쓸함, 애틋함, 그리고 언젠가는 닿을 것이라는 조용한 믿음까지.
기다림은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되며, 누군가에게는 시가 된다. 이 책에서 유희경 시인은 ‘기다리는 사람’으로서의 내밀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하염없이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답장을 쓰다 말고 한 문장을 백 번쯤 지워내는 마음, 한겨울의 첫눈을 기다리는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감정까지, 기다림의 풍경은 섬세하고도 사려 깊은 문장으로 고요하게 펼쳐진다.
늦어도 괜찮아, 오고 있으니까
아주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오는 것들에 대하여
《천천히 와》는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다. 읽고, 쓰고, 머무르는 책이다. 책의 곳곳에는 유희경 시인이 직접 고른 문장들이 독자의 손으로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시인의 어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는 이 책이 품은 기다림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평생 시인을 기다려준 사람, 말없이 삶을 지켜봐준 손길의 기록이다.
이 책은 유희경 시인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어온 오랜 친구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과 나란히 출간되었다.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친구의 말’을 덧붙이며 한 권의 책이 다른 한 권에게 마음을 건네는 구조는, 읽는 이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하며 함께 쓰고 읽는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독자는 시인의 문장을 따라 쓰며, 시인이 바라본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그의 마음에 스며들어 있는 감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단순한 따라 쓰기가 아닌 정서적 필사의 경험이자, 한 문장 한 문장을 쓰며 천천히 자신에게 도달하는 시간이다. 《천천히 와》는 지금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에게 말을 건다. 기다림이라는 감정의 결을 함께 들여다보며 자신을 천천히 마주하게 하는 시간을 선물한다.
책장을 넘기며 문장을 쓰는 손끝에서, 독자는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만날지도 모른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다가오는 것들을 믿으며 그 기다림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와》는 모든 기다림의 순간을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 바치는, 시인의 조용한 위로이자 헌사이다.
∥친구의 말∥
기다림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닳지 않는다. 더 반질반질해진다. 더 바빠지기만 한다. 더 불어나기 일쑤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은 부자다. 화수분이다. 기다림 속에서 사는 사람의 속이 깊어지는 이유다. 상대가 천천히 오길 바라는 마음은 기다리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는 바람과도 맞닿아 있다. 그렇게 ‘한동안’과 ‘한참’과 친해지는 일이 바로 기다림이다. 희경 형은 오늘도 기다린다. 기다림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다림의 앞뒤에도 기다림이 있으니까. 현재에 깃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천천히 읽혀야 한다. _오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