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대지 - 줄리아 필립스 장편소설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작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책’
〈워싱턴포스트〉 선정 ‘올해의 책’
존레너드 상, 영라이언스픽션 상 최종 후보작!
사라진 소녀들, 사라지는 대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자매 실종의 충격이 되살린 상흔
익숙한 슬픔과 상실을 겪어내는
캄차카반도 열두 여성의 이야기
《사라지는 대지》는 자매가 실종되는 8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1년간의 이야기를 매월 다른 여성의 시각으로 들려준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하나의 범죄로 서로 연결되며, 짙어가는 그러데이션처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진실에 가까워진다. 다음은 줄거리 일부.
8월: 알료나, 소피아 자매는 저널리스트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방학 때면 어머니가 일하러 가 있는 시간 동안 어린 소피아를 돌보는 건 언니 알료나의 몫이다. 자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내 근처 해변을 거닐다가, 발목을 다친 남자와 마주친다.
10월: 카탸는 친구가 초대한 모임에 갔다가 막스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막스의 답답한 모습에 실망해 결별을 작심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간 온천 여행에서 연인은 낯선 남자와 맞닥뜨리게 되고, 카탸는 그가 납치범이라고 의심한다.
11월: 초등학교 행정 직원인 발렌티나는 딸과 그 애의 가장 친한 친구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 아이 또한 실종된 자매처럼 가정을 돌보지 않는 어머니를 두었다는 이유로. 어느 날 자신의 오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간 그녀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12월: 북부 에소 마을 출신으로 원주민 혈통인 크슈샤는 시내의 대학에 다닌다. 그녀는 고향에 있는 백인 남자 친구의, 자매 실종 이후 한층 엄격해진 통제를 받고 있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교내 원주민 전통 무용단에 들어간 크슈샤는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과 남자 친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1월: 에소 마을 출신으로 시내에서 사는 나타샤는 새해를 맞아 고향에서 찾아온 어머니와 남동생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몇 년 전 실종된 동생으로 인한 어머니의 슬픔은 최근 알료나 자매의 실종으로 더해진 참이다. 남동생은 음모론에 심취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나타샤는 우연히 옆집의 미혼모와 친해져 그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4월: 옥사나는 알료나 자매가 납치되는 순간을 본 유일한 목격자다. 그러나 그녀의 증언은 수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녀는 현장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편에게도 배신당한 옥사나는 오랜 시간 함께해온 개와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지만, 어느 날 친구의 연인이 저지른 실수로 개를 잃어버리고 만다.
소외의 세계에서 다시 외면당한 여성들의 삶을
범죄 소설의 긴장감으로 주시하다
《사라지는 대지》는 미국 도서 관련 상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훌륭한 범죄소설이면서, 한편으로는 범죄소설이 아니기도 하다.
줄리아 필립스는 이 작품에서 범죄라는 끔찍한 이상 현상을, 캄차카반도에 오랜 숙명처럼 둥지를 틀고 그것을 사람들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현실을 고발하는 장치로 사용한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비극성을 수면 위로 띄우는 렌즈로서 범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캄차카반도 여성들의 체념과 절망과 분노를 그와 같이 구체화해 인식 가능한 무언가로 빚어내는 것은 결코 회복되지 않을 상처이자, 고통이라고 말하는 듯이.
이를 위해 작가는 주제의 근원인 캄차카반도마저 세상으로부터 소멸되는, 혹은 이미 소멸된 땅의 이미지로 그려내 순환하는 비극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는 자매가 실종되는 8월에서 시작해 다음해 7월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역시 순환 구조를 가진 작품의 형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라지는 대지’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익숙해져야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실의 슬픔이 실종, 즉 ‘사라짐’이라는 현상조차 없으면 깨닫지 못하는 끔찍한 괴물적 타성과의 강압적인 합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라지는 대지》 속 여성들은 새로운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거나, 혹은 유럽으로의 이주를 꿈꾸거나, 또는 낯선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일탈적 욕망에 마음을 던진다. 그들이 처한 체념의 비극은 외부로의 구원을 갈망하는 데 있다. 내부로의 수긍은 가정에 충실하고자 했던 발렌티나처럼 한계를 드러내고 어쩔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자매의 실종과 사적인 상실이라는 형태의 중첩된 ‘사라짐’을 통해 여성들은 구원과 수긍이라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서고 만다. 그리고 외부는 늘 그렇듯, 그들을 배신한다. 그리하여 캄차카 여성들은 그럼에도 그곳이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임을 어쩔 수 없는 ‘회귀’로써 깨닫는다.
그러나 그 회귀가 갈등의 온갖 부침 끝에 스스로의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궁극적 좌절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테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직시하지 못했던 슬픔과 마찬가지로 캄차카반도를 향한 그리움 또한 품고 있으며, 그것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툰드라를 품은 캄차카와 닮아 있다. 캄차카반도라는 곳의 풍광이 가진 정서가 곧 그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가 그곳으로 자신이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다. 그 땅이 그들의 역사를 품고 있는 피의 터전이기에.
작품의 결말은 범죄소설로서도 상당히 충격적이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사라지는 대지》는 훌륭한 스릴러 소설이면서, 한 세계의 역사와 문화와 갈등을 마치 그 땅의 화산들이 품은 용암처럼 한데 녹여내고 끓여내어 만든, 더 넓은 의미의 문학작품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
“…… 마침내 연대와 공감이라는 범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난다. 그들이 만난 곳이 에벤족 문화를 보존하고 기념하는 축제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라지기 쉬운 것들을 찾아내고, 연결하고, 살리고자 하는 욕망이 어쩌면 이 소설의 핵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잔인한 행복을 곱씹으며 새롭게 다가올 또 다른 태양을 향해 마치 살풀이를 하듯 몸을 내던지는 모습들.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한’과 같은 정서는 이 소설이 한국의 독자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사라지는 대지》는 베일에 싸인 동토 캄차카반도의 온갖 사회 문제와 역사를 하나로 꿰어낸 글 솜씨를 통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대작가 탄생의 징조를 증명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