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위대한 통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 난제가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마주치게 될, 어쩌면 평생을 동반자처럼 함께 가야 할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감을 주고 외로운 인생에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해준 몽테뉴의 충고를 들어보자. 이 책은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몽테뉴의 통찰을 담았다. 프랑스 법관이었던 몽테뉴는 은퇴 후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에세(essai)’라는 독특한 문학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자신의 고찰과 견해, 통찰을 담아 펴낸 책이 바로 『수상록』이다. 본래 이 『수상록』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그 중에 주옥같은 명문들을 뽑아, 주제별로 엮어 펴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몽테뉴의 사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볍지도 과하지도 않은 무게감으로 몽테뉴는 세상사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자신 있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판단이 바른지,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수없이 자문해보자. 원초적인 동시에 삶의 골자가 되는 사유를 함으로써 의식을 환기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인생의 전반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몽테뉴는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을 돌보라.”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나답게 되는 법’을 알 때 우리의 인생은 보다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또는 온전하게 살아낸 한 인간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의 부침을 겪을 때, 알 수 없는 결핍에 골몰할 때, 타인의 시선이 두려울 때 이 책을 읽어보자. 인생의 굽이마다 적절한 깨달음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이어서]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불행’의 부재일 뿐이다. 이것은 쾌락을 가장 예찬했던 철학 학파(에피쿠로스 학파)가 행복을 괴로움의 부재라고 정의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엔니우스Ennius가 “불행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듯이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불행의 부재다. 일부 즐거움에서 느낄 수 있는, 단순한 건강과 무통無痛 이상의 것을 주는 듯한 흥분과 욕구는 곧 적극적 쾌락이다. 말하자면 변화무쌍하고 통렬하며 신랄한 이 적극적 쾌락은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다. 바로 고통을 피하는 것. 예를 들어 여인을 향한 정열은 결국 고통을 뒤쫓게 하는데, 이 고통은 격렬하게 불타는 욕망을 일으킨다. 그리고 정열이라는, 이 적극적 쾌락은 오직 그 열기를 채우거나 잠재우거나 해소해줄 것을 요구한다. 다른 욕망도 마찬가지다. _p.77
부유함과 궁핍함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부든, 명예든, 건강이든, 그것을 소유한 이가 부여한 의미 이상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지니지 못한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다. 스스로의 확신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진실한 것이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지 못한다. 단지 우리의 영혼에 재료와 씨앗을 주어 더욱 강해진 영혼이 원하는 대로 향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자의만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유일한 근거이자 주권자다. 외부적인 성취는 내부적인 조직을 통해 맛과 색을 가진다. 우리가 옷을 입었을 때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옷 자체에 열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발산하는 열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몸을 차갑게 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한기를 얻는다. _p.84~85
젊은이는 인생을 준비하고 늙은이는 인생을 만끽해야 한다고, 현인들은 말한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발견한 가장 큰 오류는 우리의 욕망이 끊임없이 젊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살기 시작한다. 한 발은 이미 무덤 속에 있건만 욕구와 필요는 계속 소생하기만 한다.“죽는 순간에 대리석을 재단하면서도 무덤에 세울 생각은 않고 집을 건설하는구나.”나는 최대 1년 이내의 계획만 세우며 언제나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새로운 희망과 사업에 거리를 두고 내가 떠나는 모든 장소에 작별을 고하며 내가 가진 것들에서 매일 조금씩 멀어진다. “내가 아무것도 잃지도, 얻지도 않은 지 오래되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보다는 지금까지 비축해둔 것이 더 많다.”_p.86~87
타인을 위한 삶은 충분히 살았다. 이제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 자신을 위해 살자. 모든 생각과 의도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안위를 지향하게 하자. 확실한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라 다른 일과 병행하기에는 다소 벅찰 수 있다. 하지만 신이 우리에게 떠날 겨를을 주었으니 채비를 하자. 짐을 꾸리고 직장에서 미리 휴가를 얻자. 그리고 다른 것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우리를 옭아매는 폭력적인 속박들을 풀어내자. 그 속박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의무감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사랑하되, 오직 자신과만 혼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것과 관계를 맺되 자신의 일부를 벗겨내거나 뜯어버리지 않고서는 그것과 분리될 수 없을 만큼 결합하거나 달라붙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회에 기여할 것이 없으므로 사회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무언가를 빌려줄 수 없는 사람은 빌리지도 말아야 한다. 기력이 쇠하고 있으니 남은 힘은 안으로 끌어모아 자신을 위해서만 쓰자. _p.101~102
스스로 반성하고 사색에 온전히 몰두할 줄 아는 사람에게 명상은 완전하고 강력한 수련법이다. 나는 내 정신을 배불리기보다는 단련시키기를 더 좋아한다. 자기의 정신을 따라 생각을 지키는 것보다 더 쉽거나 강한 작업은 없다. 위인들에게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자기 업으로 삼는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묵상보다 오랫동안 전념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이것은 자연이 준 특혜다. 일상적으로 더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도 그토록 오래 하지는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상이란 신들이 하는 일이며 우리가 명상을 통해 지복을 누리듯 신들은 명상으로 천복을 누린다.”라고 말했다. _p.157
우리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나 현상을 괴물이나 기적이라 부른다면 우리 눈앞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괴물과 기적은 얼마나 많은가? 지금 우리가 아는 지식을 얻기까지 안개 속에서 얼마나 암중모색했는지 떠올려보면 우리가 가진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식이 아니라 바로 습관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하도 질리도록 많이 봐서 이제는 누구도 눈을 들어 찬란한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우리가 이미 아는 것들도 만일 지금 처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 그 무엇보다 놀랍게 여기리라.“이것들이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우리 눈앞에 별안간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토록 불가사의하고 기상천외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처음으로 강을 보면 그것이 대해大海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만큼이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규모라고 생각한다. “아주 크지 않은 강일지라도 더 큰 강을 본 적 없는 이에게는 거대해 보이게 마련이다. 나무나 사람도 마찬가지이며, 모든것에 있어 우리는 자신이 본 가장 큰 것을 막대하다고 여긴다.”_p.188~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