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 (완역본) : 현대지성 클래식 26
헨리 조지의 집필 경위
헨리 조지는 식자공 생활을 했는데, 인쇄소에서 만난 한 늙은 식자공으로부터, “도시는 매일 발전하는데 왜 우리 노동자는 늘 이렇게 가난하게 살까” 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다 같이 가난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나마 덜 괴로울 텐데, 왜 어떤 사람은 아주 잘 살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렇게 가난하기만 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헨리 조지는 당초 고전 경제학의 가르침이 맞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령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 수가 늘어나면 임금으로 돌아가는 몫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1870년대에 미국 서부로 들어오는 철도 부설 공사에 중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수입해오는 것에 대하여 반대했다. 그러나 나중에 조지는 생각을 바꾸었다. 노동자가 많을수록 오히려 부가 늘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리카도와 밀의 임금 이론을 반박하게 된 계기였다. 이어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은 토지를 많이 가진 부자들이 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지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조지는 지대를 모두 국가 세금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아주 파격적인 주장을 편다.
헨리 조지는 자신의 책이 너무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어서 생전에는 주목을 못 받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래도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 아래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진보와 빈곤』에 대한 반응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은 헨리 조지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사유제의 폐해가 노예제의 그것에 못지않다면서 그것이 현대판 노예 제도를 만들어내는 가장 커다란 사회악이라고 주장한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그의 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 사상은 조지주의(Georgism)라고 알려진 경제철학을 성립시켰고, 그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조지스트라고 한다. 그의 대표 저서 『진보와 빈곤』은 진보주의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라는 얘기도 듣는다. 진보주의 시대는 1889년부터 1920년 사이에 미국 내에 진보주의가 널리 퍼져나간 시대로서, 헨리 조지의 경제 사상과 부합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 존 피터 알트겔드는 이렇게 말했다. “다윈이 과학의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면 헨리 조지는 경제 사상의 분야에서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헨리 조지를 지지하다가 교황청으로부터 파문 처분까지 받았던 뉴욕 시의 가톨릭 성당 주임 신부인 에드워드 맥글린은 이렇게 말했다. “헨리 조지는 이 세상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천재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공감 넘치는 정서적 마음가짐은 엄청난 지적 재능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는 오늘날 문학과 과학의 분야에서 그 어떤 사람보다 존재감이 우뚝한 사회 사상가이다.”
영국 페이비안 협회의 회원이자 저명한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헨리 조지는 1880년대에 영국의 대표적 사회개혁가 6명 중 5명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이 사람들이 결국 페이비안 협회 같은 사회개혁 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헨리 조지의 사상에 가장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진보와 빈곤』이 발간된 1879년 무렵에 깊은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는 정교회 집안에서 성장했으나 10대 시절 종교에 회의를 느끼고 종교에서 이탈했다가 50세가 되자 자신의 인생을 종교적으로 마무리하려는 강렬한 동경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볼 때 기독교의 핵심 사상은 보편적 사상의 윤리이며, 폭력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었다(그의 신앙 과정은 『톨스토이 고백록』에 잘 나타나 있다). 톨스토이는 이런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타락한 정치와 경제 제도를 비판했다.
이 시기에 톨스토이는 『진보와 빈곤』을 읽게 되어 헨리 조지에게 커다란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아일랜드의 토지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진보와 빈곤』에서 발견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톨스토이는 이런 그의 감명을 그의 저서 『인생독본』과 소설 작품 『부활』에서도 헨리 조지의 사상과 글들을 언급하고 있다. 『부활』에서 톨스토이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토지공유제, 지대 수익의 국가 환수, 불로소득의 근절 등에 있어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헨리 조지 사상의 핵심
헨리 조지는 당시의 정치경제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분배 이론을 검토했다. 그것은 생산의 3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 사이에서 생산물이 분배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 결과 조지는 임금, 이윤, 지대에 대한 통설이 모두 미흡할 뿐만 아니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우선 임금에 대해서 알아보면, 애덤 스미스가 주창하고 후배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인 것으로는 임금 기금 이론이 있다. 182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 약 50년 동안 영국 경제학계에 대두된 학설로서, 리카도를 경과하여, J.S. 밀에 이르러 완성된 고전학파의 이론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임금은 자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생산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어 자본가는 노동에 대한 투자를 생산물로 회수하여 그것을 팔아서 이윤을 남긴다. 이 학설에 의하면, 노동자가 그 자신의 임금을 인상시키려면 임금 기금을 증대시키거나 노동자의 숫자를 감소시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결국 노동자의 부담과 희생을 요구하는 이론으로서, 자본가만 일방적으로 편드는 이론인 것이다. 조지는 이런 고전경제학파의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는 임금이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조지는 임금 기금 이론이 맬서스의 『인구론』에 의해 더욱 그럴듯한 이론으로 포장되었다고 지적한다. 맬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 인구를 전쟁이나 산아제한 같은 수단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인간사회는 궁핍과 비참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맬서스 이론은, 임금은 늘 최저 생계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본다. 인구 증가가 언제나 식량 공급을 부족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는 맬서스 이론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구 상황이나 우리가 생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헨리 조지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부자인 사람들의 현상 유지 입장을 지원해주는 아주 사악한 학설이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그래서 그는 『진보와 빈곤』의 전반부에서 고전 경제학의 임금기금설과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헨리 조지는 빈곤을 불러오는 원인들을 점검해 나가다가 지대의 지불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헨리 조지는 토지 투기가 산업 불황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미국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산업 활동의 각 시기에서, 토지 가치는 꾸준히 상승하여 결국 투기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땅값을 크게 폭등시켰다. 그러자 생산의 부분적 중단 현상이 발생했고, 그에 대한 필연적 결과로 효율적 수요가 중단되었다. 이로써 비교적 정체된 불황의 시기가 오고, 이 기간을 힘들게 견디어 나가면 다시 균형점에 서서히 도달되어 한동안 호황을 누리다가 투기가 다시 시작되고 그리하여 불경기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는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전국의 모든 토지를 공동 재산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토지의 몰수 같은 과격하고 혁명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망설인다. 그래서 개인의 토지 소유는 인정하여 지주의 마음대로 팔게 하되, 그 토지에서 나온 지대를 모두 국가의 세금으로 흡수하자는 것이다. 아무튼 헨리 조지는 이 지대 수입이 너무나 막대하여 모든 국가 행정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토지 가치세(단일세) 하나만 남기고 그 밖의 모든 세금은 철폐하자는 것이다.
헨리 조지와 카를 마르크스
헨리 조지의 이러한 경제 사상은 현행 경제 제도에 대하여 획기적인 도전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권익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과 닮은 점이 있다. 마르크스는 개인이 자본을 소유하는 것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가는 노동의 비용을 실제 노동의 가치 이하로 유지하여 그 차액을 챙겨서 자본으로 축적한다.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주는 기계류와 건물 등도 실은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자본가가 챙겨서 사들인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그런 기계류와 건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결국 자본은 노동의 착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 그는 생산기술의 확대로 커다란 이윤이 실현되어 그 대가가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음을 아예 무시해 버렸다. 서구의 자본주의 사회는 강력한 노조를 허용함으로써 자본가의 일방적 수탈을 억제하고, 이런 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쪽으로 진화해왔던 것이다.
헨리 조지가 마르크스와 다른 점은, 전면적인 생산 수단의 회수가 아니라,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는 데서 나오는 지대만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노동의 3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 중에서 자본은 노동의 하위 개념으로 보면서, 마르크스처럼 자본을 중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토지의 독점이 사회악의 근본 요소라고 보았다.
헨리 조지가 이처럼 토지를 사회악으로 지목하고 있으므로 그의 사상을 가리켜 토지사회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조지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반대하면서 그 사상을 그대로 실천하면 결국 독재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 사상은 1917-1989년까지 70년 동안 러시아에서 시행되었는데, 공산당 일당 독재 하에서 많은 경제적 실험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소련 해체로 붕괴되었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헨리 조지의 사상에 대한 찬반
헨리 조지의 사상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단일세 주장이 별 호소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단일세는 과거의 무질서한 조세 제도에 대한 하나의 반발로서 주장할 수는 있었으나, 오늘날 실제적인 효과는 거의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단일세만으로는 국민 소득을 완전 포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세부담의 형평성도 실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국가는 여러 가지 항목의 세금으로 세원을 포착하는 조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조지가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 주위의 환경을 관찰하고 또 몇 가지 전제들만 가지고 내놓은 단일세 주장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토지의 소유와 판매는 인정하되 땅 주인으로부터 지대만을 회수하자는 조지의 주장에 대해서도, 명목적으로는 토지사유제가 유지되는 것처럼 꾸미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제도의 밑바탕이 되는 동기와 효력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반면에 그의 사상을 지지하는 조지스트들은 이런 주장을 편다. 단일세만으로 국가 행정 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해서, 조지가 지적했던 일차적 원인인 현상, 즉 부동산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을 해결하려는 시도마저도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 부동산의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조지의 주장은 오히려 더 큰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학 책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이 찬반 양론을 접하고 두 입장이 모두 그럴 듯하게 보여서 선뜻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아무튼 오늘날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빈부격차의 최대 원인은 부동산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이고, 이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사회 정의의 구현은 요원하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한 것이다.
현대지성 『진보와 빈곤』에서는 이 방대한 내용을 쉽게 찾아보고, 또 책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하여 적당한 분량마다 소제목을 붙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