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이기다, 무인양품 - 38억 엔 적자 회사를 최강 기업으로 만든 회장의 경영 수첩
철학을 판매하는 브랜드, 무인양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면 반드시 롤모델로 삼고 참고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무인양품(良品計?)이다. 1977년 유통업체 세이유(西友)의 PB 브랜드로 출발해 1980년 ‘무인양품’으로서 정식 출범한 이 브랜드는 현재 세계 곳곳에 지점을 두고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첨병으로 성장했다. ‘무인(無印)’은 ‘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No Brand)’, ‘양품(良品)’은 ‘좋은 품질(Quality Goods)’이라는 뜻으로 “오직 물건만 보이는 물건을 만든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만들어진 브랜드명이다.
이름 그대로 무인양품은 창립 초기부터 단순히 제품만이 아닌, 사상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지향해왔다.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 하라 켄야(原硏哉)는 무인양품의 철학을 가리켜 ‘비움’이라고 설명한다. ‘비움’의 효용은 다양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유연성이다. 가능성과 창조성으로서의 비어 있는 아이덴티티, 세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궁극적 조화. 그것이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것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무인양품은 생활잡화나 의류에서 식사, 가구, 주거, 호텔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즉 무인양품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브랜드 철학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수직상승 매출에서 38억 엔 적자로의 추락
꾸준히 성장하던 무인양품은 특히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후인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매출 440퍼센트, 경상이익 1만 700퍼센트 상승을 기록하며 신화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무인신화’도 21세기 초로 접어들며 위기를 맞는다. 2001년 무인양품의 모체인 주식회사 양품계획이 38억 엔의 적자를 내며 창설 이래 최초로 이익 감소를 맞닥뜨린 것이다. 2000년 2월 말 1만 7,350엔이던 주가가 2001년 2월 말 2,750엔까지 떨어졌다. 약 4,900억 엔이었던 회사의 시가 총액이 1년 사이 6분의 1가량인 약 770억 엔으로 곤두박질쳐진 것이다. 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무인양품도 이제 끝이다”라는 비관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무인양품의 사업부장이던 마쓰이 타다미쓰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누적된 문제들로 무엇이 부진의 원인인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마쓰이 타다미쓰는 바로 실행 가능한 일들에 착수했다. 먼저 그는 전국의 매장을 직접 돌며 점장들을 만나 윗선에서 접하기 힘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그리고 물류 창고에 쌓여 있는 매가 약 100억 엔 분의 불량 재고를 전부 소각하고, 불량 재고의 발생을 방지하는 방법을 찾아내 실행에 옮겼다. 무리한 팽창으로 설립된 적자 매장의 문을 닫고,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 같은 최고의 전문가와 협업해서 제품 개발 구조를 개혁했다.
V자 회복을 이루고 구조 개혁으로 조직을 성장시키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무인양품은 마쓰이 타다미쓰가 사장으로 취임한 지 1년 만인 2002년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후로 계속 성장을 거듭해 마쓰이 타다미쓰가 사장으로 재직한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매상고 1620억 엔, 경상이익 186억 엔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다.
단순히 보이는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 만들기에 주력해 진화를 거듭하는 매뉴얼 무지 그램(MUJI GRAM)을 만들고, 본사의 업무를 표준화해 인재의 이동과 성장을 수월하게 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또 본부와 점포의 소통력을 높이기 위해 조례 메뉴 시스템을 만들어 정보의 공유와 지침 실행을 용이하게 했다. ‘WH 운동’이라는 소집단을 꾸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혁신을 추진하도록 한 것도 그가 달성한 개혁의 한 예이다.
이리하여 무인양품은 외적 팽창에 치중하는 조직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실 있는 조직, 사장이 바뀌고 경영 방침이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고 철학을 관철하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변화는 마쓰이 타다미쓰가 공사 안팎으로 중시하는 ‘단단한 기본기’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속하는 “기본의 힘”으로 지금의 무인양품을 만들다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이후 한국에서 두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된 마쓰이 타다미쓰는 이번 책 《기본으로 이기다, 무인양품》을 통해 사장으로 취임 후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무인양품을 지금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게 한 자신의 경영 전략과 기술에 대해서 말한다. 서문에서 “안타깝게도 그것을 단숨에 가능케 하는 묘약은 없다. 양품계획의 경우도 오롯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속한 결과가 성과로 이어진 것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 비결은 새롭고 혁신적인 경영 시스템 같은 걸 도입하는 것은 아니라 그저 계획(PLAN)하고 실행(DO)하며 평가(CHECK)하고 개선(ACTION)하는, 모든 일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끊임없이 반복 실행하여 궁극적으로 실행률 100%의 조직을 만들고자한 것이다. 계획한 것을 실행하기. 사실 성공을 위한 너무나 간단한 법칙이지만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이를 수첩이라는 툴을 통해 실천해냈다. 매일 매일 할 일을 계획해 수첩에 적고, 적힌 대로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다 보면 계획을 거의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다며, 자신이 수첩을 어떻게 업무와 경영에 이용했는지 자신이 직접 쓴 수첩 사진을 예시로 들어가며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개혁이란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는 마법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쌓아 나감으로써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으로 이기다, 무인양품》에서 그는 작은 변화를 가능케 하는 실행의 기법을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매년 같은 종류의 수첩을 사용해 전년도와 올해와 내년도를 나란히 살피며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는 것, 구성원끼리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인사를 주고받아 대화의 물꼬를 마련하는 것 등등이다. 바로 실행 가능한 작은 지침들도 유용하다. 수첩에 할 일을 기록할 때는 세 장의 점착 메모지를 사용하라든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 여유 시간이 1분 있으면 이메일을 확인하고 5분 있으면 필요한 통화를 하라든가, 일정 조정 메일에는 24시간 이내에 회신을 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지침이 그 예로, 경영자는 물론 중간관리자, 사회 초년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어린아이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꾸준히 해내는 조직이 강하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에게 조직과 개인의 진화는 ‘실행 100퍼센트’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워 과감하게 실행하고 점검을 통해 다음에는 먼젓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단단한 기본 위에서 성장의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진다. 무지이즘(Mujiism)이라는 사상의 전진기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무인양품처럼, 무인양품의 구조를 떠받치는 ‘진화하는’ 개인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