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어디에나
존재를 벗어나는 기적 같은 만남
저마다의 초록을 품은 따뜻한 슬픔의 모습들
“나는 심혈을 기울여 적당한 크기의 슬픔을 하나 골라냈다.
그것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선인장과 함께 건네주었다.
돌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슬퍼질 거야.”
임선우 소설집
비로소 물을 찾은 고래와 사막으로 돌아온 낙타,
상실과 결핍을 메우는 만남과 서로에의 진입
「초록 고래가 있는 방」은 두드림과 응답으로 서로의 넘나듦이 이루어지는 소설이다. 만남과 교감이란 보편적 키워드가 떠오르겠지만 이것이 범상하게 펼쳐질 리 없다. 작가는 아파트 누수로 인해 윗집 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앞에 거대한 낙타를 등장시킨다. 말도 하고 곤란해도 하고 협상도 하는 낙타를. 조금은 당황했지만 누수공사를 위해 자연스럽게 낙타를 집에 들이는 여자처럼, 독자는 어느새 단봉낙타 한 마리를 마음속 ‘그럴 수도 있지’ 방에 슬며시 들이게 된다.
“늑대 인간이랑 비슷하게 낙타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 네, 보름달이랑은 상관없지만. (……) 태어날 때부터 낙타 인간이었나요? 아니요. 사 년 전에 처음 변신한 뒤로 가끔 이래요. (……) 처음에는 덩치가 워낙 크고 사족보행이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고많은 동물 중 낙타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낙타는 무엇이든 잘 버티는 동물이니까. 낙타가 되면 무엇이든 잘 버티게 되나요? (……)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낙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21쪽)
슬픈 사연으로 모습이 변한 건 낙타만이 아니다. 실패를 겪고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술독에 빠트리고 타인으로부터 격리한 여자는, 자처해 갇힌 방에 낙타를 들이며 희한한 위로를 받는다. 자신을 미워하던 초록 고래는 그렇게 낙타의 부름으로 느리게 헤엄치기 시작한다. 누수가 생긴 틈은 메워질 것이고, 고래는 아니 여자는 비로소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뜨겁게 흐르지 못해 차고 단단해진
어느 슬픔이란 물질에 관하여
「사려 깊은 밤, 푸른 돌」에는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대신 돌을 토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점액질로 둘러싸인 동그랗고 푸른 돌멩이엔 불안과 아픔이 응축돼 있고, 그것은 전염성을 지녀 주위의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슬픔을 토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돌멩이를 병에 넣어 밀봉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복수를 위해 전해진 돌이 예상치 못한 관계의 점액질이 된다.
“우는 동안에는 이상하리만치 속이 시원했다고 했다. 곪았던 게 다 터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 희조의 슬픔은 희조 내면 어딘가에 고여 있다가 뜻밖의 방식으로 분출된 듯했다. 그런 식으로 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던 중 희조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느끼는 슬픔은 내 것이 아닌가? 네가 슬퍼지는 순간부터는 네 슬픔이지. 내가 대답했다.” (72쪽)
사실 여자가 돌을 토하게 된 건, 곁에 있던 이의 상실 때문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헛된 희망을 품던 마음이, 그 고통이 어느새 차고 단단한 돌이 된 것. 그것을 토하면 슬픔은 멀끔하게 사라져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돌을 토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희조의 얘기를 듣다가 돌을 뱉었던 날, 나는 희조의 슬픔에 조금도 가닿을 수 없었다. 희조의 얘기를 들으며 차올랐던 감정은 돌을 토하는 것과 동시에 차게 식어버렸다. (……) 따뜻함이나 눈물, 헤아림 같은 것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돌처럼 차갑게 굳어버린 것일지도. 이제 와서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 가능할까?” (90쪽)
슬픔에 가닿고 싶은 마음. 그것을 사랑이라 이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은 차갑게 굳어버린 돌을 아니 여자를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녹아 흘러내리는 푸른 돌을 기다리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여름, 쪽지에 적힌 하얀 기적
갑자기 목도한 비현실적인 현실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는 무려 금괴를 밀수하는 담합에서 시작한다. 썩 은밀하지도 그리 음험하지도 않다. 싱겁게 성공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이상한 불법행위가 순식간에 우리를 오사카 한복판으로 이끈다. 사실 두 여자는 밀수만을 위해 일본으로 온 건 아니었다. 각자 찾고 싶은 게 있었다. 물론 찾지 못한 채, 찾을 수 없음을 확인한 채 발길을 돌리지만 그들에겐 서로가 있다. “남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며 누군가를 저주하라고 부추기는 영하 언니가, “삶에서 좋은 것은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내게 말을 걸어준” 유일한 그녀를 너무나 좋아하는 주영이.
둘은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상처와 단념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올 뻔하지만 공항에서 짧은 기적이 펼쳐지며 이들의 새로운 게이트를 암시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지만 어쩐지 행복한 엔딩임을 믿게 한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는 영하 언니와 나를 발견했다.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둘은 멈춰 서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중 그들이 이틀 전의 나와 영하 언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나는 지금이야말로 오키나와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들의 짧은 기적.” (133~134쪽)
다정한 슬픔들과 무심한 다독임
그 속에서 피어날 작은 기적을 꿈꾸며
『초록은 어디에나』의 해설을 쓴 박혜진 평론가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만남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단순하거나 관습화된 만남이 아닌, “편협한 의미로서의 만남”이 아닌 현실의 벽과 개연성이란 논리에 가로막히지 않는 만남. “우리의 잠긴 생각을 열어젖”히는 이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변화에 의연해지며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임선우가 주관하는 만남을 연결 짓는 지점마다 기적이 펼쳐질 게이트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디에나 있는 초록처럼, 기적 역시 어디에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