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인문학
사람과 밥상에 대한 통찰을 찰진 감성으로 빚어 낸
오인태 시인의 맛있는 ‘밥상 인문학’ 결정판
《밥상머리 인문학》은 저자 오인태의 말과 행동, 글과 신념이 일정한 궤를 그리는 데서 시작한다. 교사, 장학사, 교육 연구사, 교육 연구관을 거쳐 지금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 원칙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 일생을 노력했다. “마땅히 시인은 시대의 전위에 서 왔다.”는 그의 말처럼, 과거 해직을 불사했던 전교조 활동부터 시민운동, 언론 운동, 문화 운동까지 저자의 족적에는 물러섬도 돌아옴도 없다.
그의 밥상에는 그 고집스러움이 배어 있다. 오인태는 혼자 하는 식사일지라도 성의껏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예를 갖추는 것에서 사람의 품격이 비롯된다고 믿는다. 밥과 반찬 두어 가지, 그리고 빠지지 않는 국 한 그릇을 올린 그의 개다리소반이 수수한 듯 고아하게 다가오리라. 품격 있는 사람과 삶에 대한 오인태의 단상들을 그의 밥상과 함께 풀어내는 이유이다.
개다리소반에 차려 낸 밀도 높은 일상
책 속의 밥상 사진들은 저자가 평소 직접 차리고 찍어 온 것이다. 상차림도 사진도 출간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따로 준비한 것이 아닌 만큼 투박해 보일 수 있지만, 본서는 그 안에 담긴 진솔한 일상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목차도 사계절로 나누었다. 각 계절마다 어울리는 밥상 차림과 그에 깃든 추억이나 저자만의 레시피 등 밥상에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사람의 품격에 대한 에세이 한 편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세이와는 또 다른 밥상 이야기가 들어간 이유는 지면 너머 저자와 겸상을 하듯 이 책이 읽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다채롭기 마련이다. 음식이 나오면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된다. 특히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 집주인이 마련한 밥상을 받으면 그 사람의 맛에 대한 취향부터 개인의 역사, 집안의 문화까지 요리에서 퍼지는 내음과 훈기에 묻어난다. 그렇게 음식으로, 그에 담긴 이야기로 사람을 감각한다. 감각으로 먼저 사람을 느끼고 이해한다. 그런 다음에는 저마다 밥을 한 술씩 뜨면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 보통의 식사 자리, 그 흐름을 그대로 책에 담았다.
우선 밥상에 집중한 저자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 사람의 품격으로 말미암은 저자의 생각들, 그중에서도 밥상을 앞에 두고 편히 나눌 수 있는 글이 뒤따른다. 음식에 적당한 온도가 있듯 음식과 어울리는 이야기에도 적절한 온도가 존재한다. 너무 뜨거워서 밥 먹는 자리가 열띤 토론의 장이 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차가울 필요도 없지 않은가. 오인태가 말하는 사람의 품격, 그 기저에는 사람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이 있다. 본서의 주제 의식이 독자에게 좀 더 편안히 가닿을 수 있는 온기가 지면 사이사이 스며 있다.
매일 개다리소반에 스스로를 위한 밥상을 정성껏 차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상을 지탱하고, 나를 지탱하는 사소함에 꾸준히 진지하고 성실한 그의 모습을 수년간 지켜보았다. 먹지 않으면 정말이지 굶어 죽는 인간에게 밥이란 필수불가분한 원초적 관계이다. 그래서일까. 배를 채운다는 최소한의 기준만 갖추면 그게 무엇이든, 어떤 형태든 밥이라 불린다. 습관처럼 때가 되면 맞이하는 밥상의 당연함, 그래서 대수로울 것 없다 여겨지는 것에 그는 ‘어떻게’라는 조건을 단다. 오늘은 어떤 밥상을 차릴까.
그는 밥상이 곧 사람의 품격이라 일컫는다. 누군가 보고 있지도 않고, 또 내보일 필요도 없는 혼자만의 식사를 어떻게 준비할지 기꺼이 고민하는 것부터 사람의 품격이 비롯되고 삶의 태도가 형성된다.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곁들인 단출하지만 구색을 갖춘 그의 개다리소반 한상차림에 사람이 보인다. 오인태가 보인다. 짐작건대 그의 글과 활자 사이 드러나는 따뜻한 시각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밀도 높은 그의 일상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지면을 소반 삼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가 매일 밥상 앞에서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느린 숟가락질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