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의 미래를 잇다
독립운동의 숨결...남북중러 경협의 꿈
몇 년 전, 중국 청도공항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을 만났다. 길림성 고위 공무원인 조선족 A씨는 인사를 나눈 뒤, 작심한 듯 독한 말을 쏟아냈다.
“반도 것들은 다 기회주의적이지요!”
뜻밖의 도발적인 발언에, 양해를 구하며 무슨 말인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A씨는 ‘일제강점기 만주는 일본인과 맞서 싸우다 쫓겨 온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에 남아 살던 조선인들은 일본과 싸우기 보다는 친일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기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는 주장이었다.
곁에 있던 다른 조선족은 ‘A씨의 할아버지가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 장군과 함께 승리를 이끈 광복군’이라고 귀띔했다. A씨를 분노하게 한 사건은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인천국제공항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고 믿어온 A씨는,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자신을 외국인 줄에 세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내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분인데, 손자인 나를 외국인 취급을 할 수 있느냐?”며 고함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온 우리들은 말없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DNA는 대륙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동북 3성의 고위 공무원 시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북경대학을 졸업한 법조인과 엘리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조선족을 살인청부업자로 그린 한국영화를 보고, 공항에서 외국인 대우를 받으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해 러시아 특파원들은 색다른 기사를 타전했다. 1980년대 소련 록 음악의 전설인 ‘빅토르 최’의 짧은 인생을 다룬 영화가 제작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빅토르 최의 아버지는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려인 2세다. 빅토르 최는 29세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할 때 까지, ‘혈액형’ ‘마지막 영웅’ 등 저항적인 히트곡들을 남겼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 사는 한국인은 ‘재미교포’ ‘재일교포’인데, 중국과 옛 소련에 사는 한국인을 ‘조선족’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얘기한다. ‘조선족’은 중국 중앙정부가 부르는 소수민족의 이름이고, ‘고려인’ 역시 모스크바 중심적인 표현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40년대 만주와 연해주에 200만 명에 육박하는 조선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조정래 선생의 일제강점기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된 블라디보스톡과 두만강 일대를 방송기자 십여 명이 다녀왔다. 북한 노동자 수 만 명이 인력송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옛 발해의 땅. 2016년 9월, 남북관계가 가장 경색됐던 시기였다.
하지만 기자들은 열흘 간의 일정을 마친 뒤 펴낸 탐사보고서에서 거침없이 주장한다.
‘제재와 대립이 아니라 대화로 남북문제를 풀어야 한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92%에 달한다.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를 해소해야 한다’
‘러시아인의 외국 선호도 조사에서 한국이 6위다. 가스 전력 물류사업을 함께 해야 한다’
세월이 흘러,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격의없이 만나는 시대가 왔다. 2년 전, 동북아 정세가 꽁꽁 얼어붙었던 시기에 방송기자들이 용기 내 외친 주장과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길림성의 중국동포 A씨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며 흐뭇해했다. ‘대한민국 여권, 재외동포’라고 쓴 창구로 들어오며 내국인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연변에 프로축구팀 연변FC가 있다. 한국 국가대표 출신인 박태하 감독이 이끌고 중국동포와 한반도에서 스카우트된 한국선수들이 주축인 팀이다. 3년 전 연변 FC는 2부리그에서 우승하면서, 오랜만에 1부 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방송기자들이 중국동포들과 어깨 걸고 연변FC를 응원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방송기자연합회장 안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