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빨치산 2 - 보복의 회오리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일이 걸렸다. 그냥 몇 해 걸렸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오랜 동안 작가는 단 한 번도 그 싹을 지우려 한 적은 없다. 작가 스스로가 그 대열에 몸담았기에 배게 된 생명은, 또 그랬기에 키우고 낳는 데 그토록 긴 세월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험한 시대가 판을 치고 있었기에 앉힐 자리가 없었고, 담고 싶은 이야기가 절실해서 함부로 깃을 틀지 못했다. 편안한 시대가 오면 쓰려니. 그때 가서 아주 잘 쓰려니.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달래다가 훌쩍 여든 고개를 넘기고 말았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무슨 빨치산 소설이냐, 하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아무아무개가 쓴 무슨무슨 책들을 들먹이면서, 그것들이 쓸고 지나간 뒤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느냐 하는 목소리. 낳기는 지금이지만, 배기는 50년도 더 되었는데 말이다. 작가는 생애의 막바지에야 가까스로 늦둥이를 낳고 이런 비판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 소설 《남도빨치산》은 어디까지나 당시성을 문제 삼았다. 그때로 돌아가국내외의 제반 정황들을 다시 재생시키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 속의 ‘아기’를 키웠다.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다는 지청구를 예상하였지만, 그저 우악스레 부둥켜안고 이 50살 먹은 글 《남도빨치산》에 매달렸다. 실은 좀 더 써야 제대로 마무리가 되는데,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또 촉급한 나머지 서둘러서 매듭을 지었다. 늘게 잡고 되게 챈 꼴이 되었다. 그래놓고 보니, 다음 일은 고사하고 이 일 자체가 마지막 일이 되게 생겼다.
소설 《남도빨치산》은 조국의 변혁기인 6ㆍ25를 계기로 영호남 지방, 특히 전라남도 지방에서 벌어졌던 무장유격투쟁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그 시대성, 역사적 기록성을 존중했다. 당시의 여러 문헌과 기사들을 곳곳에 차용한 것도 그런 데 연유한다.
무릇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서사물이 이디 있으랴마는 사건 사실 그 자체만으로 문학작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들에 근거하여, 그 무대에 등장 명멸하는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 형상화하는 것이 소설 창작의 방법론이다. 이것은 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다.
그리하여 《남도빨치산》은 실지로 있었던 일들을 뼈대로 하고 있으므로 그 어떤 역사물보다 사실적(事實的)이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 엮은 것이 역사라면,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 일들, 즉 미처 모르는 일들은 그 서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남도빨치산》은 그 미처 모르는 일들에 허구(虛構), 즉 진실의 다리를 걸쳤다. 똑같게 많은 것은 줄이고, 성글게 적은 것은 보태면서 사실이 닿지 않는 허방을 예술적 진실로 메웠다. 그럼으로써 보다 사실적(寫實的)이고자 했다. 이 글이 소설 형식을 취한 이유다.